[글로컬 라이프] 도쿄의 부엌 '쓰키지 먹자골목'의 분투

입력 2019.04.15 03:12

최은경 도쿄특파원
최은경 도쿄특파원
지난 11일 오전, 도쿄 주오구 쓰키지(築地)를 찾았다. 도쿄에 와본 한국인 관광객이라면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쓰키지 시장'이 있는 곳이다. 지하철역 출구를 벗어나자마자 해산물 냄새가 풍겨오고, 좁은 시장 골목을 내려다보는 듯한 거대한 쓰키지시장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선 2017년 하루 평균 수산물 1600t 이상이 거래됐다. 이곳 시세가 도쿄의 초밥값을 좌우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수산물 외에도 청과물·육고기 등 각종 식재료도 함께 팔렸다. 그래서 도쿄 사람들은 쓰키지시장을 '도쿄의 부엌'이라고 불렀다.

최근 쓰키지의 풍경이 크게 변했다. 딱 반년 전인 지난해 10월 11일 이곳에서 약 4㎞ 떨어진 도요스(富州)에 최신식 시설을 갖춘 새 시장이 생겼다. 쓰키지시장의 도매업자들이 도요스로 옮겨가면서 쓰키지시장 입구엔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안내문이 크게 걸렸다. 도매시장 건물을 빙 둘러싼 '철의 장막'도 생겼다. 시장 건물 철거 과정에서 나오는 소음과 먼지, 그리고 쓰키지에 남은 '쥐 떼'를 막기 위한 것이다.

도요스시장에 초대받지 못한 쓰키지의 쥐떼는 도쿄의 골칫거리 중 하나였다. 쓰키지시장은 먹을 게 풍부한 데다 낡고 복잡하다 보니, 쥐 떼가 들끓는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이곳에 사는 쥐만 1만 마리에 달할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일본 언론들은 "쓰키지시장이 이사하면 남은 쥐 떼들이 가까운 번화가 긴자(銀座) 등으로 퍼지는 게 아니냐"고 우려했다. 도쿄도는 지난해 예산 3500만엔을 투입해 쥐 떼와 전쟁에 돌입했다. 요미우리에 따르면 쥐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쓰키지시장 건물을 둘러싸는 가림판을 설치하고, 끈끈이와 쥐약을 동원해 쥐 3000여 마리를 잡았다고 한다.

쓰키지에 남은 또 다른 존재, '쓰키지 장외(場外)시장' 상인들도 생존을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 장외시장은 쓰키지시장 도매건물 인근에 형성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소매시장으로, 우리로 따지면 '쓰키지 먹자골목'에 가깝다. 한국 관광객들이 찾는 쓰키지시장 맛집도 대부분 장외시장에 있다. 쓰키지시장이 떠난 뒤 이곳에 남은 상인들 역시 '쥐'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상인들은 "시장 이전 이후 도리어 쥐가 줄었다"거나 "쥐가 어디 있느냐"며 손사래를 친다. 시장 이전 후 도매상인이나 초밥전문점 고객의 방문이 뜸해진 마당에, '쥐를 봤다'는 목격담마저 늘어나면 큰 타격을 입을 게 뻔한 탓이다.

어란파스타 전문점
쓰키지 장외시장 450여개 점포 상인들은 도요스로 이전하기보다, 80년간 '도쿄의 부엌'이었던 쓰키지 브랜드를 지키기 위해 분투 중이다. 일본 먹거리 문화를 알리는 전진기지로 명맥을 이어나가겠다는 것이다. 지난 2000년 도쿄 지하철 오에도선(線) '쓰키지시장' 역이 생긴 뒤로 외국인 관광객들의 방문이 크게 늘어난 덕이 크다. 관광객 손님을 끌기 위한 노력도 한창이다. 수십년간 고기를 취급하던 정육점은 소고기초밥집을, 어란집은 어란파스타 전문점〈사진〉을, 건어물 가게는 세련된 '말차 라테' 전문점을 새로 차렸다. 최근 도쿄를 찾는 한국 지인들에게 "초밥 먹으러 쓰키지시장에 가도 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가도 된다. 쓰키지를 지키려는 상인들이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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