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등급' 떨어진 베이징 대사관

조선일보
  • 안용현 논설위원
    입력 2019.04.15 03:16

    2013년 1월 베이징의 초미세 먼지 농도가 세계보건기구 허용치의 40배에 육박했다. 대낮인데도 어스름했다. "손잡은 연인의 얼굴이 안 보일 정도"라는 보도도 있었다. 베이징에 있던 외교관과 상사원들이 '엑소더스' 움직임을 보이자 미국·유럽 등은 스모그 수당을 신설하고 연봉을 올려줬다. 중국통(通) 핵심 인맥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한국 외교부는 1년 뒤 공기청정기를 지급한 게 고작이었다.

    ▶당시 우리 외교관들은 "가족들한테 미안했다"고 했다. 다음 근무지로 '공기 좋은 곳'을 첫손가락으로 꼽았다. 그런데 베이징 대사관이 워싱턴·도쿄·런던처럼 근무 선호도가 가장 높은 '가급'으로 분류된 까닭에 다음번엔 험지(險地)로 불리는 '라급'으로 가야 했다. 중국만큼 공기가 나쁜 몽골이나 목숨이 위험할 수 있는 분쟁 지역에 배치됐다. 작년 상반기 베이징 근무 희망자는 거의 없었다.

    [만물상] '등급' 떨어진 베이징 대사관
    ▶외교부가 베이징 대사관 등급을 '가급'에서 '나급'으로 떨어뜨렸다고 한다. 중국 기피 현상을 덜어보려는 고육책일 것이다. 나급이 되면 다음 근무지로 험지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미국과 더불어 G2로 불리면서 국제사회에서 대중(對中) 외교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베이징 대사관에서 일하는 외교관 수가 워싱턴 대사관보다 많다고 한다. 가장 큰 공관인데도 근무 희망자를 모으기 위해 등급을 낮춰야 하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전직 외교관은 "중국 환경은 계속 나빴지만 5~6년 전만 해도 중국에 서로 가려는 분위기였다"며 "최근 기피 현상은 공기 탓만이 아닐 것"이라고 했다. 주권을 양보한 '사드 3불(不)'과 대통령 방중 '혼밥' 등 다음 정권에서 외교 적폐로 터질 수 있는 지뢰밭이 겁났을 것이란 얘기다. 이 정부 외교관들은 전(前) 정부에서 위안부 합의와 대북 제재 강화 등을 맡았던 선배들이 어떤 험한 꼴을 당했는지 똑똑히 봤다.

    ▶지금 동북아는 외교 전쟁이 뜨겁다. 노련한 프로들이 선봉에 선다. 9년 만에 바뀌는 도쿄 주재 중국 대사는 일본 근무만 25년을 했다. 중국은 '최고의 일본 전문가'를 키우기 위해 유학부터 46년을 투자했다. 베이징 주재 미국 대사는 시진핑 주석과 30년 넘는 인연이 있다. 베이징 주재 일본 대사도 중국통이다. 반면 이 정부는 중국어 한마디 못하는 사람을 연속으로 베이징 대사로 보냈다. 안 그래도 중국은 한국 대사를 상대하지도 않는다. 중국 전문가를 꿈꾸는 외교관 씨가 말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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