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인공기' 방송 사고

조선일보
  • 안용현 논설위원
    입력 2019.04.13 03:11

    정부 지원을 받는 한 TV가 엊그제 한·미 정상회담을 보도하면서 문재인 대통령 사진 밑에 북한 인공기를 붙여 넣는 화면을 내보냈다. 방송 사고였다. TV 측은 "문 대통령이 미·북 대화를 중재하러 방미 길에 오른다는 점을 강조하려 했다"고 해명했다. 그래서 화면 위엔 한·미 정상 얼굴을, 아래엔 북·미 깃발을 붙였다는 뜻인 듯했다. 이게 화를 키웠다. '단순 실수'가 아닌 '의도'가 된 탓이다.

    ▶관련 기사에는 문 대통령과 인공기를 묶어서 조롱하는 댓글이 엄청나게 붙었다. '진실 보도'라는 등의 비아냥이 많았다. 그러자 이번엔 문 대통령 지지자들이 발끈했다.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이 TV 측에 지급하는 연 300억원의 재정 보조금을 없애라'는 글이 올라왔고, 15만명이 찬성을 눌렀다. 이 TV가 최근 마약 사건 피의자들 그래픽을 노무현 대통령과 닮게 만들었다는 비난도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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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방송에서 '국기(國旗) 실수'는 드물지 않다. 2014년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수영 선수 이름 옆에 일장기가 붙었고, 2012년 런던올림픽 때는 태극기 자리에 중국 오성홍기가 들어갔다. 대한민국을 '대한일본'으로 쓴 자막도 있었다. 방송사가 사과하는 것으로 끝났다. 정부 지원을 끊으라는 청원도 없었다.

    ▶2016년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시진핑 주석을 최고 지도자가 아니라 '최후 지도자'라고 잘못 썼다가 기자와 데스크가 중징계를 받았다. 북한은 말할 것도 없다. 김일성 추모 기사를 읽다가 '김정일 서거'라고 한 아나운서는 흔적 없이 사라졌다. 김일성 원수를 '원쑤'로 쓴 기자도 있었다는데 목숨을 부지 못 했을 것이다.

    ▶언론에 오보와 방송 사고는 피할 수 없는 숙명과 같다. 확인을 거듭해도 '도둑맞으려면 개도 안 짖는다'는 것과 같은 상황도 발생한다. 심지어 문 대통령도 방미 때 방명록에 '대한미국'이라고 썼다. 사람은 실수할 수밖에 없다. 정부 지원을 받는 매체가 문 대통령을 비판하려는 의도를 가졌을 리 없다. 문 대통령에게 긍정적인 보도를 하려다 생긴 제작 실수일 것이다. 회사 내부 차원에서 경고하거나 견책하는 정도로 끝내야 하는 사안이었다. 그런데 TV 측은 하루 만에 보도국장과 뉴스 총괄부장을 보직 해임했다. 그것도 모자랐는지 어제는 최고 책임자인 보도본부장까지 직위 해제했다. 한 방송 기자는 "정권에 거슬리는 사고가 날 때마다 보도국을 싹쓸이할 건가"라고 했다. 지금은 5공 시대가 아니다. 지나치면 모자란 것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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