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 한·미 정상회담은 대체 뭔가

조선일보
입력 2019.04.13 03:15

11일 미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접한 국민은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이 회담을 추진했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북 비핵화를 둘러싼 핵심 쟁점마다 두 나라 정상의 생각이 다르다는 사실만 확인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한 스몰 딜(부분 비핵화)을 받을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여러 가지 스몰 딜이 있을 수 있고 그 내용을 봐야겠지만 지금은 빅 딜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빅 딜은 핵무기를 없애는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말하는 '굿 이너프 딜' 또는 '조기 수확'이라는 개념은 애초에 통할 수 없는 얘기였던 셈이다.

트럼프는 대북 제재에 대한 질문에 "제재가 유지되기를 원한다. 제재를 상당히 강화할 수도 있지만 현 수준의 제재가 적당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 희망과는 정반대다. 하노이 회담 직후 문 대통령이 미국과 협의하겠다던 '개성공단, 금강산 재개' 문제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은 적당한 때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3차 미·북 정상회담에 대해 문 대통령은 모두 발언에서 "가까운 시일 내에 열릴 수 있으리라는 전망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절차를 밟아야 한다. 서두르지 않겠다. 서두르면 좋은 합의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 방식, 제재 완화 문제, 미·북 정상회담 시기에 이르기까지 문 대통령의 희망과 엇나가는 생각만 밝힌 셈이다.

외교의 상식으로는 두 국가 간 정상회담은 실무 차원에서 논의와 합의가 끝난 문제를 추인하는 것이다. 만약 실무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면 그야말로 두 정상이 깊은 얘기를 나누며 협상하고 담판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그 어느 쪽도 아니었다.

한·미 양국 간 사전 의견 조율이 된 것은 명백히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고 두 정상이 속 깊은 대화를 한 것도 전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입장들을 일대일 단독 회담이 열리기 전에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다 밝혀 버렸다. 그 이후 열린 회담은 채 5분도 가지 않았다. 이견을 좁힐 수도 없었거니와 그럴 시간조차 없었다. 이러니 햇볕정권의 통일부 장관 출신조차 "이번 회담은 노 딜(합의 없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청와대는 "하노이 정상 회담 이후 제기된 여러 가지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대화의 모멘텀을 살리는 계기가 됐다"고 자평했다. 청와대는 전혀 다른 뜻으로 한 말이겠지만 이번 회담이 비핵화에 대한 한·미의 입장 차를 분명히 드러냄으로써 불확실성을 해소한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생각이 다른데 그걸 인정하지 않고 적당히 쇼만 계속하면 결국 파국이 온다. 하노이 회담 이후 한 달여 한·미 관계가 그런 불투명한 상황에 있었다. 이번 회담으로 영변시설 해체와 대북 제재 완화를 맞바꿔 미·북 협상을 재개한다는 정부의 구상은 실현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그런데도 새 통일부장관이 직원들에게 주문한 대로 남북 경협을 추진했다간 우리 기업이나 금융기관이 큰 화를 입게 될 것이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이제 비핵화 쇼는 끝났고, 진짜 핵 폐기 외엔 길이 없다'는 사실을 알리고 설득하는 데 전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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