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세금 많은 남한… 세금 없앴다는 북한은 수시로 돈·물품 걷어

조선일보
  • 태영호 전 북한 외교관
    입력 2019.04.13 03:00

    [평양남자 태영호의 서울 탐구생활]

    [평양남자 태영호의 서울 탐구생활]
    일러스트=안병현
    한국에 와서 아직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조세 구조다. 신문과 TV에서 전문가들이 상속세, 증여세, 종합부동산세, 비자금, 탈세 의혹 등 각종 용어를 쏟아내지만 이해하기 어렵다. 자동차를 살 때 세금을 분명 냈는데 얼마 후 집에 세금 고지서가 날아들었다. 또 무슨 세금인가 알아보니 살 때 내는 건 취득세이고 보유세를 또 내야 한다고 했다.

    조세 제도를 알아보기 위해 책을 사서 읽어 보다가 국가 세금이 11가지, 지방자치단체 세금이 11가지나 된다는 내용을 보고 깜짝 놀랐다. 주변 동료에게 매달 세금을 얼마 내는지 물어보니 은행 계좌에서 자동 이체로 빠져나가 잘 모른다고들 했다. 일부 지인은 담배나 소주를 마시면서 주류세나 담뱃세를 내니 애국한다고 농담도 했다.

    북한은 1974년 김일성 일가의 세습 통치 구조가 들어서면서 세금 제도를 철폐했다.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는데 온 학교 학생들이 대열을 짓고 ‘경사났네, 경사났네, 우리나라 경사났네, 수령님의 은덕으로 세금 없는 나라 됐네’라는 노래를 부르고 북을 치면서 평양시 거리를 행진한 기억이 난다. 세금 없는 나라가 된 게 왜 자랑스러운 건지 아버지에게 물어보니 공산주의로 가는 길에서 세금 철폐는 필수 과정인데 사회주의 혁명을 제일 먼저 한 소련보다도 북한이 먼저라고 했다.

    김일성이 세금 제도를 철폐할 땐 국영기업의 거래 수입금이나 기업 이익금으로 국가 예산을 충당할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경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자 그 돈으로는 핵무기 생산 등 국방비 유지하기에도 벅차졌다. 그래서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세외 부담’이라는 독특한 세금 없는 과세 제도가 생겨났다.

    예컨대 직원이 100명인 직장에서 주택이 50채 모자라 나라에 집을 지어달라고 요구하면 정부에서 선별해 예산을 할당한다. 하지만 할당하더라도 예산이 턱없이 부족해 직장 책임자가 직원들에게 돈을 걷을 수밖에 없다. 지난 4월 5일 김정은이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건설장을 찾아 내년 태양절(김일성의 생일인 4월 15일)까지 완공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런 경우 중앙당에서 군부대와 기업소 단위별로 언제까지 완공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기관 기업소들에서는 자체 자금이 없으면 직장 성원들로부터 돈이나 물건을 걷을 수밖에 없다.

    만 9세부터 70세까지 모든 사람이 조직 생활을 하는데 성인은 직장과 정치 조직을 통해, 아이들은 학교에서 세외 부담을 한다. 초등학교 학생들은 ‘꼬마계획’ ‘토끼 기르기 운동’ 등을 통해 매년 일정한 수량의 파지, 파철, 파병, 토끼 가죽 같은 것을 학교에 바친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간부들은 세외 부담에서 제외된다. 돈이 좀 있어 남보다 많이 내면 노력 동원에서 빠지고 집에서 놀아도 된다. 해외에서 근무하는 외교관도 세외 부담은 예외가 아니다. 외교관 한 달 월급이 1000달러도 안 돼 한 달 생활하기도 어려운데 매일 평양에서 세외 부담 전보가 날아온다. 매달 대사관별로 국가에 얼마씩 바쳤는지 정리해 많이 기부한 외교관에게는 ‘노력영웅’ 칭호와 같은 ‘공민의 최고 영예’도 안겨준다.

    공명심에 사로잡힌 일부 외교관들이 담배, 상아, 코뿔소 등을 밀수하다가 상주국 경찰에 걸려 추방되는 일이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 상주국에서 단속되지 않고 돈을 많이 벌어 ‘충성 자금’을 많이 바치면 ‘영웅’이요, 단속에 걸려 추방되면 ‘바보 멍청이’ 소리를 듣는다.

    국고에 돈이 없고 화폐를 수거하지 못하니 돈을 마구 찍어낸다. 세외 부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계속 회의를 하고 걷고 또 걷을 수밖에 없다. 북한이 정상국가로 가는 첫걸음은 주민을 괴롭히는 세외 부담 제도를 폐지하고 조세제도로 복귀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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