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체육]지도자의 열린 마음,열린 생각이 체육을 바꾼다

입력 2019.04.11 18:06

"내가 정말 즐거웠던 것은 축구를 할 때였다. 내 인생의 폭이 넓어지기 시작한 것은 축구 밖으로 나가면서부터다. 여러분도 더 넓은 세상을 만나고 더 많은 친구들을 사귀길 바란다."
몇 년전 스포츠조선 주최 '공부하는 선수' 포럼에서 축구선수 출신 행정가 이용수 세종대 교수는 어린 꿈나무 선수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었다. 잊을 만하면 우후죽순 불거지는 체육계의 각종 사건들, 서로 암암리에 덮어주고 막아주는 '침묵의 카르텔', 체육계의 폐쇄적 구조를 깨뜨리기 위한 정답이 이 말 속에 있다. 학교에서 공부만 하던 학생들이 운동장을 달리며 새로운 세상을 만나듯, 운동선수들은 그들만의 '이너서클'에서 벗어나 넓은 세상과 소통할 때 비로소 성장하고 발전한다. 세상과 자유롭게 소통하는 행복한 선수들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도자의 마인드 변화가 우선돼야 한다.
▶깨어 있는 지도자, 세상을 향해 열린 마인드
국가대표의 훈련이 '세상과의 단절'이 되어서는 안된다. 지도자들은 선수들이 세상과 소통하는 일을 막아서는 안된다. 훈련 시간이 끝나도 선수들은 끊임없이 코치, 감독의 눈치를 본다. 훈련시간을 쪼개 야간대학원에 진학하는 일마저도 어렵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 지도자는 선수가 최선의 기량을 이끌어내도록 돕는 멘토이자 파트너다. '갑을 관계'가 아니다.
진천선수촌
평창올림픽에서 쇼트트랙 종목을 담당했던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김언호 박사는 "지도자가 선수의 24시간을 모두 지배하는 훈련 방식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쇼트트랙 스타' 심석희 역시 하루종일 조재범 전 코치가 컨트롤 하는 구조였다. 김 박사는 "일부 지도자의 경우, 감독의 권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내 말만 들어'라고 선수를 통제한다. 심리, 스포츠과학 등 전문가들과의 통로도 일체 끊어버린다. 금메달 등 성과를 독점하고자 한다. 훈련뿐 아니라 심리, 개인생활까지 장악하게 된다. 훈련 외의 시간에도 친구, 전문가 누구와도 자유롭게 만날 수 없다. 눈치를 보게 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물론 현장 지도자만의 잘못은 아니다. 감독 위에 또 다른 감독이 있다. 협회 경기력향상위원회. 임원 등 구조적인 시스템 속에 어쩔 수 없이 선수를 압박하고 통제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김 박사는 "그럼에도 훈련장, 경기장에서 선수와 부딪치는 사람은 감독"이라고 했다. "감독, 코치가 위의 눈치를 봐서는 안된다. 의식 있는 지도자, 깨어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박사는 지도자의 열린 마인드를 강조했다. "지도자가 모든 부문에서 전문가가 될 수는 없다. '내가 최고'라는 자부심도 있겠지만 바깥세상은 빠르게 움직인다. 감독은 매니저다. 선수들을 위해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코칭아카데미와 같은 교육 시스템이 중요하다."
▶선수촌 라이프, 콘텐츠가 필요하다.
위기는 기회다. 진천의 뜻 있는 일부 지도자들은 이미 스스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조재범 전 쇼트트랙 코치의 성폭력 의혹 사건' 이후 진천의 지도자들은 스스로 선수촌 권익위원회를 만들었다. 유상주 국가대표 펜싱 코치(사브르)를 위원장으로 각 종목 추천을 받은 지도자,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7명의 위원을 선임하고, 챔피언하우스에 모여 '끝장토론'을 통해 선수들의 목소리를 경청했다.
권익위원으로 활동중인 강호석 스쿼시대표팀 감독은 " 변화된 코칭 환경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는 지도자들이 늘고 있다. 스마트 기기를 활용해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심리상담사를 초빙해 선수들의 감정적인 부분을 챙기고, 학회 및 세미나에 참석해 새 정보를 받아들이는 젊은 지도자들이 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타종목 지도자들과도 수시로 모여 토론한다. 무조건 '네'라고 수용하는 수동적인 선수보다 '왜요?'라고 끊임없이 질문하는 능동적인 선수를 만들기 위한 지도법을 고민한다. 전통적인 팀 중심 지도법뿐 아니라 각기 다른 선수의 성향과 감정을 이해하는 맞춤형 지도법으로 자기주도적 훈련을 이끄는 방법도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선수촌 지도자들의 자발적 변화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변화를 이끌기 위한 환경의 개선이다. 충북 진천군 광혜원면에 위치한 진천국가대표선수촌은 고립돼 있다. 선수촌 주변엔 변변한 편의시설조차 찾아볼 수 없다. 태릉선수촌 시절엔 가족, 친구들이 찾아오면 함께 밥 먹고 담소를 나누며 숨통을 틔울 시간과 공간이 있었다. 진천선수촌에서는 오직 '운동하고, 먹고, 자고, 치료하는' 4가지 시간만이 존재한다. 지도자는 24시간 선수만 바라본다. 해가 지면 선수촌 주위엔 적막감이 감돈다. 촌내에 그 흔한 편의점도, 카페도 없다. 주 52시간, 저녁이 있는 삶, 주말이 있는 삶은 남의 이야기다. 열악한 환경속에 성적만을 강요받는 삶, 선수 인권 못지 않게 지도자의 인권도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저녁시간을 활용할 체계적인 프로그램이 없다. 일본 국가대표의 아지노모토선수촌에선 코칭아카데미, 엘리트아카데미가 활발하게 운영중이다. 영국 런던의 비샴EIS에서도 선수들은 스포츠 과학과 훈련의 원활한 연계속에 일상을 즐기며 자유롭고 행복하게 훈련을 이어가고 있다. 홈페이지엔 '부활절 이벤트'가 한창이다. 우리는 '운동기계'를 만들지 말자면서 세상과 한참 동떨어진 외딴 곳에 초대형 선수촌을 지었고, 막상 선수촌의 콘텐츠는 빈약하기 짝이 없다. 정책과 인프라가 따로 논다.
강호석 감독은 "집에선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들이 행복하고, 체육현장에선 지도자가 행복해야 선수들이 행복하다"면서 "지도자가 선수들을 지도하는 일이 즐겁고 정당한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 열악한 환경 속에 결과만을 바란다"고 지적했다. 김언호 박사는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문을 걸어잠그고, CCTV를 더 설치하고, 규율만 강화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오히려 더 오픈해야 한다"고 했다. "운동 외의 시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선수촌 라이프'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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