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취] 마지막 500억도 기부한 '전자산업의 선각자'

조선일보
  • 정철환 기자
    입력 2019.04.12 03:49

    김정식 대덕전자 회장 별세… 국내 최초 PCB부품 개발·양산
    복지재단 세워 1000억원 기부, 임종 직전까지 "AI에 투자하라"

    김정식(90) 대덕전자 회장이 11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병상에 누운 와중에도 "한국 AI(인공지능) 연구 발전에 써달라"며 재산 500억원을 모교 서울대에 쾌척한 지 50여일 만이다.

    고인은 일생을 한국 전자 산업과 공학 발전에 바친 선각자였다. 1929년 경기도 남양주에서 태어나 1946년 함남 조선전기공업학교를 마쳤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여동생 셋과 함께 상경해 서울대 전자통신학과에 입학했다. 호텔 웨이터로 일해가며 주경야독, 고학(苦學)을 이어갔으나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중단했다. 지도교수, 학교 선후배들과 동반 입대해 대구에서 통신장교로 복무했다. 결국 입학하고 8년 뒤인 1956년에야 졸업을 했다.

    휴전 후 황폐해진 서울을 보고 사업보국(事業報國)의 뜻을 세웠다. 1965년 대덕산업을 창립해 무역업을 시작했으나 공학도의 피를 속이지 못했다. 1968년 모든 전자 제품의 기본 바탕인 인쇄회로기판(PCB) 제조에 뛰어들어 라디오와 흑백 TV용 PCB 생산을 시작했다. 1990년대엔 우리나라 최초의 전(全)전자교환기용 PCB 부품을 만들었고, 지금은 스마트폰과 5G(5세대) 통신 장비 등에 쓰이는 첨단 PCB를 생산하고 있다. 대덕전자는 지난해 9600억원의 매출을 냈고, 직원은 2000여명이다. 한국 전자 산업의 성공 역사를 따라 함께 성장한 셈이다.

    김정식 대덕전자 회장이 지난 2월 17일 본지 인터뷰에서 “MIT 교육 혁명을 다룬 조선일보 신년특집 기사를 보고 서울대에 500억원을 기부하게 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김정식 대덕전자 회장이 지난 2월 17일 본지 인터뷰에서 “MIT 교육 혁명을 다룬 조선일보 신년특집 기사를 보고 서울대에 500억원을 기부하게 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박상훈 기자
    김 회장은 지난 1월 1일 자 본지 1면 '질주하는 세계―대학' 편에 실린 '모든 학문은 AI로 통하라, MIT의 교육 혁명' 기사를 보고 기부를 결심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2월 17일 입원 중인 병원 회의실에서 가진 본지 인터뷰에서 "4차산업의 핵심은 AI인데,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AI 연구 시설이 있는지 고민하고 있던 차에 조선일보 기사를 보고 '아, 이거다' 싶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1970년대부터 한국엔지니어클럽, 대한전자공학회, 한국정보산업연합회,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 등에서 활동해왔다. 1991년에는 사재를 털어 해동과학문화재단을 설립, 지금까지 450억원 이상을 이공계 연구 지원과 장학금, 공대 교육 시설 후원금으로 내놨다. 2002년에는 또 소외 계층을 지원하는 대덕복지재단을 세워 음성꽃동네와 전국 장애인복지관 등 노인·장애인 복지 시설에 매년 1억원 이상 기부하고 있다. 지금까지 기부액은 1000억원 이상으로, 이 중 서울대에 기부한 금액만 동문 중 최고액인 657억원이다. 1998년 1억불 수출의 탑을 수상했고, 1999년 금탑산업훈장과 통신기술 대상, 2001년에는 자랑스러운 서울대 공대 동문상을 받았다.

    차남 김영재 대덕전자 사장은 "아버지는 항상 외국 경제 신문과 공학 잡지를 챙겨 보면서 '우리나라 전자 산업이 갈 데까지 갔다. 남의 것을 모방하는 것으로는 더 이상 안 된다.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자주 말씀하셨다"면서 "공학도이자 사업 후배로서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받고 싶다"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아내 배선옥 여사와 아들 영인·영재(대덕전자 사장)씨, 딸 은하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 발인 15일 오전 8시. (02)3010-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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