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4차 전원회의에서 '자력갱생'을 25차례 언급하며 '절약 투쟁'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노동당 핵심부인 정치국과 당중앙위에 경제를 담당하는 내각 인사 14명을 무더기로 발탁했다. 미국이 요구하는 '비핵화 조치' 없이 제재 국면을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한 것이다. 다만 김정은은 전날 정치국 확대회의에 이어 이날도 핵 관련 언급이나 직접적인 대미(對美) 비난은 하지 않았다. 무력 도발은 자제하며 국제 정세가 유리해질 때까지 내부를 단속하며 버티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노동당 중앙위 위원(120여 명)과 후보위원(100여 명 등) 전원을 소집하는 당중앙위 전원회의는 당대회(전당대회 격)에 버금가는 최고 의사결정기구다. 통상 1년에 1차례 열린다. 당대회가 짧게는 5년, 길게는 36년 주기로 열린 전례를 감안하면 사실상 당의 '최고지도기관'이다.
김정은이 이런 회의에서 '비핵화' 언급 없이 경제 발전만 강조한 건 당장 미국과의 대화 재개에 목매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노동신문에 따르면, 김정은은 '최근에 진행된 조미 수뇌회담(미·북 정상회담)의 기본 취지와 우리 당의 입장'에 대해 밝히며 자력갱생을 강조했다. 2차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김정은이 육성으로 차후 당의 방침을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어 김정은은 미국을 '제재로 우리를 굴복시킬 수 있다고 혈안이 되어 오판하는 적대 세력'이라고 불렀다. 그러면서 "심각한 타격을 줘야 한다"고 했다. 경제난 속에서도 핵무력을 계속 증강시켜 '제재 무용론'을 입증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은 "김정은이 강공과 굴복, 현상 유지라는 세 가지 선택지 중 일단 후자를 택한 것"이라며 "당장은 제재 해제가 어렵다는 판단하에 경제난 극복에 모든 역량을 동원하려는 의도"라고 했다.
다른 북한 전문가는 "경제난 가중(加重)이 불 보듯 한 상황에서 김정은은 당 상층부에 강한 충성과 체제 결속을 요구한 측면도 있다"고 했다. 김정은이 이날 '자력갱생'(25회)과 함께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사회주의'(25회)였다. '자립경제'는 8회 사용했다.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김정은이 내부를 다잡으며 '장기전'에 들어갈 수 있다는 신호"라고 했다.
외교가에선 김정은이 '비핵화' 시계를 느슨하게 조정하며 협상력을 극대화하는 선택을 했다는 평이 나온다. 내년 미국 대선 등 비핵화 협상의 큰 변수도 남아 있는 상황이다. 실제 워싱턴포스트는 2차 미·북 정상회담 이후 미국이 북한에 '실무 대화 재개'를 위한 신호를 보냈지만 응답을 받지 못했다고 이날 보도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번 회의 결과에 대해 "핵·경제 병진 노선에서 경제 건설에 총력 집중하겠다는 작년의 결정을 지속 이행하겠다는 걸로 평가한다"고 했다. 그러나 남주홍 경기대 교수는 "북한이 경제 발전을 강조하고는 있지만,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했을 뿐 핵물질 생산 등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며 "북한의 전략은 일단 중국·러시아 등 우방의 지원으로 버티며 미국의 입장 변화를 기다리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