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덕꾸덕 밥도둑, 맛보게 돼 '영광'입니다

입력 2019.04.12 03:02

[그곳의 맛] [13] 영광굴비
참조기 천일염에 절인 뒤 해풍·햇볕에 말려 만들어… 어획량 줄어 최근엔 부세로 가공

10마리 한 두름에 500만원인 무게 5.6㎏ 영광굴비.
10마리 한 두름에 500만원인 무게 5.6㎏ 영광굴비.
해마다 4월이면 전남 영광 칠산바다에서는 '부욱부욱' 소리가 들린다. 참조기 소리다. 얼핏 들으면 우는 소리 같다. 실은 사랑의 세레나데다. '거기 있는 임이여, 여기 있는 날 좀 보소'라며 호소하는 소리다. 참조기는 세레나데를 부를 때 부레를 풍선껌처럼 오므렸다 편다. 1970년대만 해도 영광에선 "조기 떼 우는 소리에 잠 못 이루었다"는 말이 있었다. 그만큼 조기가 많았다. 정약전도 '자산어보'(1814)에서 "조기 울음소리가 한양까지 들렸다"고 했다. 박정호 국립수산과학원 연구사는 "아쉽게도 최근에는 이런 소리가 멀리서 들릴 만큼 어군이 몰려다니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오는 20일은 곡우(穀雨)다. 모든 곡물이 잠을 깬다는 여섯 번째 절기다. 예부터 곡우 전후로 산란 직전 알을 밴 '황금 참조기' 맛이 일품이었다. 이때 잡은 참조기를 곡우사리 조기, 곡우살 조기라 했다. 참조기는 조기 중의 으뜸이란 뜻이다. 이 참조기를 천일염에 절여서 해풍과 햇볕에 꾸둑꾸둑 말리면 최상품 굴비가 된다. 조선 중기 시인 이응희는 굴비를 예찬하는 '조기'라는 시를 썼다. "불에 구우면 좋은 반찬이 되고, 탕으로 끓여도 맛이 좋아라. 가장 좋은 건 굴비로 말리면, 밥반찬으로 으뜸이라네."

국내 굴비 시장의 80%를 점유하는 영광 굴비는 우리나라 굴비의 대명사다. 10마리 한 두름에 500만원 하는 무게 5.6㎏짜리 영광 굴비도 있다. 영광군은 영광 굴비 전통을 계승하고 소비 촉진을 겨냥해 '곡우사리 영광굴비축제'를 해마다 연다. 오는 19~21일 사흘간 영광 법성포에서 진행한다. 굴비 무료 시식, 굴비 경매, 굴비 엮기 대회 등이 이어진다. 김윤곤 영광군 굴비천일염젓갈팀 주무관은 "20일 곡우는 '굴비 먹는 날'이기도 하다"라며 "축제 기간 시중가보다 저렴하게 굴비를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칠산바다와 접한 영광 법성포(法聖浦)는 '영광(靈光) 굴비'의 '영광(榮光)'을 이어가는 곳이다. 지난해 말 기준 영광의 굴비 가공 업체 473곳(전국의 80%)이 굴비 1만3000t을 생산해 2700억원어치를 팔았다. 이 중 300여 곳이 법성포에 몰려 있다. 가공 업체는 굴비의 원료 참조기를 냉동 보관하다가 염장·세척·건조해 굴비를 만들어낸다. 정용호 영광군 굴비천일염젓갈담당은 "요즘은 부드러운 것을 좋아하는 소비자 입맛을 감안해 딱딱하지 않게 이틀 만에 촉촉한 굴비를 만든다"며 "법성포에서 가공한 굴비가 전국의 식당과 가정에 오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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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기를 천일염으로 절여 적절한 해풍과 햇볕에 말리면 ‘밥도둑’ 굴비가 된다. 국내 굴비시장의 80%를 점유한 전남 영광굴비가 으뜸으로 꼽힌다. 사진은 영광 백수읍 하사리 마을의 겨울철 굴비 말리는 모습. 2015년 전남도 사진 공모전 수상작이다. 영광의 전통적인 굴비 말리는 모습을 잘 보여주는 사진으로 유명하다. /전남도

영광 굴비의 경쟁력은 전통적인 가공 비법에서 나온다. 쓴맛이 나는 간수(소금물)를 1년 이상 빼고 숙성한 영광산 천일염을 사용한다. 천일염을 양쪽 아가미와 입, 몸통에 넣어 염장한다. 조기와 천일염을 번갈아 가면서 쌓아 두고 가마니로 덮는 영광 전통 염장법인 섶간에서 파생된 방법이다. 470여 업체가 저마다 독특한 굴비 가공 방법을 보유했다. 다른 지역 굴비는 단순하게 소금물에 담갔다 빼낸 거라 짠맛이 유독 강하다고 한다. 법성포 일대는 정부가 지정한 '굴비 산업 특구'다. 영광군은 영광 굴비 생산자 단체와 함께 진품 인증 상표를 제작, 보급한다. 영광 굴비의 보존·육성, 품목의 다양성, 품질의 차별화·고급화에 힘쓰고 있다.

최근 들어 참조기 어획량이 급감하고 있다. 서해로 올라오기도 전에 월동하는 곳까지 쫓아가 잡는 무차별 포획과 갯벌 매립 등으로 인한 어장 황폐화로 벌어지는 일이다. 동해 명태가 사라졌듯이 서해 명태로 불리는 조기의 씨가 마르고 있다. "돈 실으러 가자"는 조기잡이 어부들의 노래는 옛말이 됐다. 참조기 어획량은 2011년 5만9000t에서 지난해 2만3200t으로 7년 새 61% 줄었다. 국내 연간 소비량 6만t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나머지는 조기와 같은 민어과 사촌인 부세와 백조기(보구치), 중국산 참조기 등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다. 부세로 만든 저렴한 굴비도 대부분 영광에서 가공한 것들이다.

어획량 감소에 대응해 영광군은 전남도 해양수산기술원과 함께 참조기와 부세를 양식하고 있다. 김준성 영광군수는 "청탁금지법 시행과 참조기 원가 상승, 식생활 변화로 굴비 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참조기 양식 시설을 늘리고 1인 가구 맞춤형 한 마리 진공 포장지 보급, 위생적인 생산 환경 조성, 해외 시장 개척 등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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