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의 뉴스 읽기] 김정은 만난 뒤… 대통령 입에서 '건국 100년'이 사라졌다

조선일보
  • 김태훈 논설위원
    입력 2019.04.11 03:01

    '역사정치'에 휩쓸린 건국

    김태훈 논설위원
    김태훈 논설위원

    3·1 만세 운동으로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진 지 오늘(11일)로 100년이다. 현 정권이 출범 이전부터 '건국 100년'으로 기념해야 한다고 수없이 외쳤던 그날이다. 지난해 정부 수립 70주년 기념행사는 대충 치르고 지나갔다. 여론의 질타가 잇따랐다. "불량 국가 북한도 건국 70주년을 자축하는데, 성공한 역사를 써 온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 취급하느냐."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정부는 '임정 수립이 대한민국 건국'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던 정부가 '건국 100년' 주장을 슬그머니 퇴장시켰다. 청와대 설명은 "건국 100주년을 쓰자, 쓰지 말자는 회의가 열린 적이 없다"는 게 전부다. 학계에선 다른 말이 나온다. '임정을 싫어하는 북한 눈치를 본 것'이란 해석이다. 임정 100주년은 대통령조차 참석 않는 행사로 쪼그라들었다. 대한민국은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15도, 상하이 임정이 출범한 1919년 4·11도, 둘 다 '건국'으로 기념하지 않는 이상한 나라가 되고 말았다. 역사를 정치적 필요에 따라 입맛대로 주무른 '역사 정치'의 탓이 크다.

    ◇나라는 있지만 건국은 없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정부는 임정 100년인 2019년이 '대한민국 건국 100년'임을 누누이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야당 시절이던 2016년 광복절 페이스북에 "8·15를 건국절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역사를 왜곡하고 헌법을 부정하는(…) 대한민국 정통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얼빠진 주장"이라고 했다. 대통령 당선 후 첫 8·15 경축사에선 "2년 후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이고 "내년 8·15는 정부 수립 70주년"이란 말로 건국과 정부 수립을 구분했다. 지난해 1월 2일 국립현충원 방명록에도 '건국 백년을 준비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문 대통령의 건국 시점 관련 주요 발언 정리표

    문 대통령이 '1919년 건국'을 공식적으로 언급한 마지막 행사는 지난해 3·1절 기념식이었다. "3·1운동과 건국 100주년을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과…"라고 했다. 그런데 지난해 4월 남북 정상회담 이후 '건국 100주년' 주장은 더 이상 대통령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작년 7월 출범한 대통령 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명칭도 그렇고, 8·15 대통령 경축사도 그랬다. '건국 100년'이란 표현이 빠졌다. 여권에선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작년 9월 국회 연설 도중 "내년은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이 된다"고 말한 것이 마지막이다. 그런데 올 들어 청와대는 '새로운 100년'이란 표현을 쓰기 시작했고, 민주당도 '한반도 새 100년 위원회'를 출범시키며 '건국 100년' 슬로건을 사실상 퇴출시켰다.

    ◇북한이 싫어하는 임시정부 건국론

    북한은 정권 수립일인 1948년 9월 9일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국절로 기념한다. 대한민국 임정 100년을 인정하면 북한 정권의 정통성이 훼손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임시정부를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북한 조선역사편찬위원회가 간행한 '조선민족해방투쟁사'는 상하이 임정을 '매국노 민족반역자 이승만의 분자들로 구성된 반인민적 정부' '장개석의 주구(走狗)로 전락해 진정한 애국자들과 애국적인 공산주의자들을 학살하고 외교권을 팔아넘겼다'고 비난한다.

    문재인 정부의 고민은 여기서 비롯된다. 이용선 청와대시민사회수석은 지난 2월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남북공동 독립운동 연구,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남북 간에는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을 둘러싸고 독립운동에 대한 견해차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임정을 연구해 온 국내 학자들은 임정에 대한 북한의 태도를 잘 알고 있다. 작년 8월 정부 수립 70주년 관련 세미나에 참석했던 한 역사학자는 "이 정부가 1919년 건국론으론 북한과의 접촉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건국' 표현을 쓰지 않기로 했다는 말이 참가자들 사이에 돌았다"고 했다. 정부가 주도한 '3·1운동 및 임시정부 100주년 위원회'에 참여한 또 다른 학자는 '건국 100년' 대신 '새로운 100년'을 쓰는 것에 대해 "건국절을 둘러싼 소모적 논쟁은 피해야 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본다"면서도 "'건국 100년'이 빠지게 된 이유는 학자인 나보다 정치인에게 물어보라"고 말했다.

    北, 9·9절 건국 행사 - 북한은 지난해 9월 9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건국 70주년 기념 9·9절 열병식을 성대하게 진행했다.
    北, 9·9절 건국 행사 - 북한은 지난해 9월 9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건국 70주년 기념 9·9절 열병식을 성대하게 진행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1919년 건국론은 이승만의 선견지명

    사실 '1919년 건국론'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주도했다. 이승만은 제헌국회 개원식에서 국회의장 식사(式辭)를 통해 "이 국회에서 건설되는 정부는 기미년(1919년)에 서울에서 수립된 민국(民國) 임시정부의 계승"이라고 선언했다. 한성 임시정부는 그해 9월 상하이 임정과 통합했다. 도진순 창원대 교수는 올봄 '역사비평' 기고문 '건국연도와 연호, 그 정치적 함의'에서 이 선언으로 대한민국은 남한뿐 아니라 한반도 전체를 대표하는 중앙정부의 위상을 갖게 됐다고 분석했다. 도 교수는 이승만의 임시정부 계승 선언은 '명확한 반공·반북 선언이며 한반도는 남한에 의해 통일되어야 한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난해 8월 '대한민국 독립 70주년 기념 학술대회'가 있었다. 정치학자 김성호 연세대 교수는 제헌 헌법 전문(前文)을 분석하고 "제헌 국회가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orthodoxy)은 1919년의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민주적 정당성(legitimacy)은 1948년 5·10 총선에서 각각 찾았다"고 했다.

    1919년 상하이 임시정부 - 1919년 10월 11일 촬영한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 요인들의 기념사진. 대한민국 원년(大韓民國 元年)이라고 돼 있다.
    1919년 상하이 임시정부 - 1919년 10월 11일 촬영한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 요인들의 기념사진. 대한민국 원년(大韓民國 元年)이라고 돼 있다. /한국이민역사연구소

    1948년 대한민국 수립 1948년 8월 15일 서울 중앙청에서 열린 대한민국 정부 수립 축하 기념식.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대한민국이 기미년 3·1운동으로 출범한 임시정부를 계승한다고 선언했다.
    1948년 대한민국 수립 - 1948년 8월 15일 서울 중앙청에서 열린 대한민국 정부 수립 축하 기념식.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대한민국이 기미년 3·1운동으로 출범한 임시정부를 계승한다고 선언했다.

    이승만의 '1919년 건국론'은 대한민국 건국 시점을 두고 현 정권이 벌여온 역사 정치를 진퇴양난에 빠뜨렸다. 1919년 건국론이 대북(對北)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지금 정부는 더는 '임정 100주년'을 '건국'과 연관시킬 수 없게 된 것이다.

    北 "상하이 임정, 2000만이 피 흘릴때 팔장낀 자산계급이 만든 단체"
    "부패한 부르주아 파벌싸움" 폄훼… 독립운동자금 모금엔 "인민 수탈"

    북한 사회과학원역사연구소가 펴낸 공식 역사서인 '조선전사'는 상하이 임정을 '2000만 민족이 피 흘리고 싸우고 있을 때 팔짱을 끼고 정세 발전의 추이를 바라보고 있던 자산계급 출신이 만든 단체의 대표 격'이라고 폄훼했다. 상하이 임정 수립을 '마치 독립운동의 사변이라도 되는 것처럼 요란스럽게 떠들어댔으나 본질은 반일 항쟁 기세에 편승하여 저들의 정치적 야욕을 채워보려는 투기 행위의 산물' '태어난 첫날부터 부패 타락한 부르주아 민족운동 상층분자의 파벌 싸움 마당이 되었다'고 조롱했다. '파벌적 속성'과 '사대주의적 관점' '인민 수탈을 위한 책동'을 임정의 특징으로 꼽았으며, 파리강화회의 대표 파견과 구미위원부 설치 등은 '사대주의적인 처사이자 민족적 존엄을 훼손하는 매국배족적 책동'이라고 평가절하했다. 북한 역사에서 '안창호는 친미사대주의자', '이승만은 친미매국역적'이다.

    독립운동 자금 모금도 '인민 수탈을 위한 책동'이자 '애국 동포들로부터 금품을 빼앗아 제놈들의 배를 채우려는 파렴치한 범죄행위'로 매도했다. 이렇게 해서 모인 자금은 '어느 하나도 독립을 위해 쓰이지 않고 징수원의 교제비로 탕진되거나 임정 요인의 주머니에 부패 타락한 생활 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고 썼다. 임정의 모든 활동은 '3·1운동 후 부르주아 민족운동의 전면적인 쇠퇴와 몰락 과정을 직접적으로 반영한 것이자 그 뚜렷한 표현'이라고 단언했으며, 그 후 한반도에선 '노동계급을 선두로 하는 민족해방운동 시기가 시작되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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