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우리 아버지는'

조선일보
  • 한현우 논설위원
    입력 2019.04.10 03:16

    어느 의원이 '늬들 아버지는 그때 뭐 하셨느냐'고 사납게 물었을 때 영화 '친구'에서 고교 선생이 학생들에게 "느그 아부지 뭐 하시노?" 묻고는 차례로 뺨을 때리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 의원은 제 아버지를 감싸느라 남들 아버지의 과거를 야유하듯 물었을 테지만 지금쯤 후회하고 있어야 옳다. 그 의원은 듣는 이들의 뺨을 향해 손바닥을 치켜든 셈이다.

    ▶이 의원의 '뭐 하셨느냐'는 글을 읽은 사람들이 '우리 아버지는'이란 제목의 글을 줄줄이 올리고 있다고 한다. 6·25 때 인민군이 독약 풀까 봐 친구들과 우물을 지켰던 아버지, 31년간 광산에서 석탄 캐며 6남매 키우고 진폐증 얻어 돌아가신 아버지, 평양에서 태어나 기관사로 일하다 전쟁 때 연합군 물자를 날랐던 아버지…. 모두 훈장감이다. 다달이 연금을 받지 않아도 아버지들은 다 유공자다. 시인 김현승이 쓴 대로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만물상] '우리 아버지는'
    ▶고3 때 이북에서 전쟁을 맞은 아버지는 국군에 자원 입대했다. 전쟁 터지고 첫 겨울, 미군 수송기가 산등성이에 떨군 보급 물자를 두고 남과 북의 굶주린 군인들이 전투를 벌였다. 그곳에서 아버지는 팔과 다리에 총상을 입고 명예 제대하셨다. 그리고 40년이 지나서야 국가 유공 대상임을 알았다. 자식들이 대신 지원서를 넣을 때 아버지는, 불구가 된 것도 아닌데 미안한 일이로구나, 하셨다.

    ▶고속도로 통행료와 공영 주차장 요금을 할인받을 때마다 아버지는 아이처럼 좋아하셨다. 비닐봉지 한 장 허투루 안 버리고 달력 이면지를 메모지로 쓰시던 분이었다. 세상 뜨면 현충원에 안치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시고는 무척 기뻐하셨다. 나 같은 졸병에게도 정말 그곳 자리가 있느냐고 몇 번이나 물으셨다. 영결식에서 3군 의장대 경례를 받는 아버지 영정을 보며 아들로 태어나 새삼 자랑스러웠다.

    ▶시인 손택수는 어려서 한 번도 목욕탕에 데려가지 않는 아버지를 원망했다. 다른 부자(父子)가 서로 등 밀어주는 모습을 부러워했다. 아버지가 병원에 실려간 뒤에야 비로소 그는 아버지 등을 본다. 거기엔 지워지지 않는 시커먼 지게 자국이 있었다. 모두에게 아버지는 그런 사람일 것이다. 자신의 아버지가 소중한 것은 가족 간의 사랑이다. 그 울타리를 넘어서 자신의 아버지를 경우에 맞지 않게 국가의 유공자로 만들려다 논란이 벌어지자 '너희 아버지는 뭐 했느냐'고 핏대를 세운다면 제 아버지를 더 욕되게 할 뿐이다. 참으로 부박(浮薄)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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