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상의 발굴 이야기] [66] 직지심체요절의 산실

조선일보
  •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입력 2019.04.10 03:10

    유네스코가 1972년을 '세계 도서의 해'로 지정하자 프랑스 국립도서관은 '동양의 보물, 책'이란 전시회를 열기로 했다. 그곳에 근무하던 박병선 사서는 특별전의 한국 코너에 전시할 고서를 찾으려 서고 곳곳을 뒤졌다. 이윽고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직지)' 한 권을 발견했다.

    박 사서는 그 책 말미에서 '1377년 청주목 외곽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를 만들어 찍어냈다'는 내용을 확인하곤 깜짝 놀랐다. 그때까지 현존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으로 인정받아온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의 성서보다 70여년이나 앞선 것으로 한국이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했음을 보여주는 실물 자료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노력으로 직지는 유명해졌지만 그것을 찍어낸 흥덕사의 위치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청동 금구, 흥덕사지, 국립청주박물관.
    청동 금구, 흥덕사지, 국립청주박물관.
    1984년에 문제 해결의 단서가 나왔다. 그해 11월 청주대박물관 박상일 연구원이 청주시 운천동에서 절터 하나를 새로이 찾아냈지만 택지 공사 과정에서 크게 훼손되는 일이 벌어졌다. 남아 있는 부분에 대한 긴급 발굴 조사가 이듬해 여름 시작됐고, 10월 8일에 이르러 박 연구원이 청동 금구(禁口·쇠북) 조각 하나를 발견했다. 중장비 삽날에 찍혀 원상을 잃었지만 측면에 여러 글자가 새겨져 있었고 그 가운데 '흥덕사'란 표현이 있었다.

    조사단은 발굴 성과를 종합해 이 '흥덕사'가 직지를 찍어낸 흥덕사와 같은 곳임을 밝혔다. 현존 최고의 금속활자본 직지의 산실이 비로소 확인된 것이었다. 발굴 결과는 곧 외부로 공개돼 국내외 수많은 언론에 대서특필됐고 정부는 유적의 중요성을 인식해 흥덕사지를 국가 사적으로 지정했다.

    우리의 문화유산 가운데 '세계 최초'라 부를 수 있는 것이 드문 현실에서 직지에 대한 관심은 정부·학계뿐만 아니라 시민들 사이에서도 뜨거웠다. 특히 청주시의 경우 직지를 도시의 대표 브랜드로 만들었고 국내에도 혹시 남아 있을지 모를 직지 찾기 운동에 적극 나섰으나 끝내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2001년 그간의 노력이 일부 결실을 맺어 직지는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 목록에 등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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