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의 한 간부는 요즘 휴대폰에 저장돼 있지 않은 번호로 전화가 오면 받지 않는다고 했다. '업무용 보안 휴대폰'에서 통화 연결 때마다 약 1초간 "지지직" 하는 잡음이 들리기 때문이다. 이 간부는 "휴대폰에 보안칩이 있어 통화 내용이 감시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이 때문에 업무 중 외부와 통화할 때는 사무실 전화를 쓰고, 외부인과 만날 때는 항상 후배 직원과 함께 나간다고 했다. '내부 정보 유출자'로 오해받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다.
다른 간부도 "업무용 전화는 다 감청이 된다고 생각하고 전화를 받는다"고 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업무 휴대폰의 잡음은 상대방 휴대폰이 보안용 폰인지 인식하는 과정에서 데이터를 주고받다 생긴 잡음"이라고 했다. 통화 감시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간부는 "감시용으로 쓰일지 누가 아느냐"고 했다.
현 정부 들어 청와대의 외교부 보안 조사가 10차례 넘게 이뤄지면서 최근 외교관들은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다. 작년 말엔 서기관·사무관 등의 개인 폰까지 걷어간 일이 있었다. 또 지난해 한 간부는 부처 인사 사안을 외부에 얘기했다가 문책을 당했다. 2017년 말 청와대 특감반이 간부 10명의 휴대전화를 압수해 가 사생활 감찰까지 한 뒤 외교부는 더욱 청와대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이전 정부에서 잘나갔다는 이유로 북미·북핵통(通)들이 '적폐'로 취급돼 밀려난 데 이어 감찰까지 일상화되면서 외교부 전체가 자신감과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청와대에 외교부 수뇌부들까지 코드를 맞추다 보니 '3류 외교'로 전락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청와대는 출범 초기부터 북핵·대북 정책에서 한·미 공조를 중시해 온 외교부를 배제하고 정보 공유조차 꺼려온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