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의 달달하게 책 읽기] 아름다운 탐라에 숨겨진 모진 역사

조선일보
  • 우석훈 경제학자
    입력 2019.04.06 03:00

    목호의 난

    우석훈 경제학자
    우석훈 경제학자
    나폴레옹 고향 코르시카섬을 작년에 방문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역민이 요구한 코르시카어 공용어 인정과 외지인의 부동산 소유 금지를 거부했다. 하지만 코르시카의 특별한 지위를 헌법에 반영하겠다고 약속했다. 자신들의 언어를 가지고 있는 이 독특한 지역은 프랑스의 오래된 숙제다. 예전 켈트족의 집단 거주지였던 브르타뉴 지역 역시 자신들의 언어가 있고, 헌법을 고쳐서 공용어로 인정해 달라는 요구를 계속해 오는 중이다.

    프랑스는 민족 국가라고 표현하지만, 헌법에 민족을 규정하지는 않고 있다. 프랑스를 구성한 역사 속의 골족? 그러나 누가 알겠는가. 앤서니 퀸이 열연했던 영화 '25시'는 유대인으로 몰렸다가 오히려 순종 아리안 혈통으로 인정받아 영웅이 된 한 사나이의 기구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아리안족? 누가 알겠는가.

    정용연의 만화 '목호의 난'(딸기책방)은 고려 공민왕 때인 1374년 최영 장군의 제주도 토벌 사건을 그리면서 제주도의 정체성과 함께 우리 모두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목호(牧胡)는 삼별초 이후 몽골의 직접 지배로 넘어간 탐라에서 살았던 몽골인 말치기 목동을 말한다. 이들은 한반도 육지와는 다른 공동체를 형성했다. 제주만 그랬겠는가. 가문의 족보들이 정통성을 말해준다고 하지만, 그것도 모를 일이다. 한민족이 원래부터 여기 살았던 것도 아니라는 것 아닌가. 오키나와와 일본의 관계도 크게 다른 것 같지 않다.

    '목호의 난'
    제주에 남은 목호들은 원이 쇠퇴한 후에도 고려에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비극적 결사 항전이 벌어졌고, 제주도 주민 절반 가까이가 죽는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되었다. 애월 바닷가 두 개의 석상과 비석만이 그 사실을 아직도 지켜보고 있다. 만화는 원에서 명으로 넘어가는 격동기를 담담하게 묘사한다. 그 시기는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는 전환기이기도 했다.

    칼 들고 활 쏘는 딱딱한 얘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종대왕이 세워준 열녀비에 얽힌 로맨스도 있다. 제주도에 가는 사람들에게 이 만화를 권하고 싶다. 한 번쯤은 모질었던 탐라의 역사를 생각해보시면 좋을 것 같다. 국가주의와 중앙의 힘에서 살짝 비켜난 사람들의 삶을 통해 국가와 민족의 기원을 돌아보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6년간 공들여 그린 단아한 그림은 마음속 여행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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