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릴 일 없는 기술자 되겠다" 미장·조경 배우는 20代

입력 2019.04.04 03:01

고용불안으로 기술학원 다니는 젊은층·대기업 퇴직자 늘어
경기 나빠도 영향 덜받는 건물보수·기계·전기설비 등 인기

윤성찬(29)씨는 지난달 서울시가 위탁 운영하는 직업 훈련 기관 '동부기술교육원' 건물보수과에 입학했다. 6개월 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따면 빌딩·아파트 관리사무소나 인테리어 업체에 취업할 수 있다. 3일 미장 교육을 받은 그는 얼마 전까지 어린이집 유아체육 교사였다. 대학에서 체육학을 전공한 윤씨는 스포츠의류 회사를 운영하다 어린이집에 취직했다.

"월급은 괜찮았지만 유아체육 교사는 마흔이 넘으면 잘 안 써줘요. 오래 할 일을 찾다가 기술을 배우기로 했죠. 건물 보수는 AI(인공지능)도 대신할 수 없는 기술이잖아요."

3월 개강한 동부기술교육원에는 윤씨처럼 건물 보수, 조경 관리 등을 배우는 사람이 많았다. 20~30대, 명문대 졸업자, 대기업 출신 퇴직자도 있었다. 경기를 덜 타는 블루칼라(육체노동)로 일하려는 사람들이다. 교육 과정은 6개월~1년이고 교육비는 무료다.

5년 전만 해도 가장 인기 있는 전공은 조리과였다. 그해 40명 모집에 216명이 지원해 경쟁률이 5대1을 넘었다. 한식·일식·양식 조리기능사 자격증을 따 식당을 창업하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올해 신입생 모집 때 인기 있는 분야는 조경관리과였다. 30명 모집에 148명이 지원했다. 건물 보수, 전기 설비 관리 분야 경쟁률도 4대1을 넘었다. 반면 조리과 경쟁률은 1.6대1로 떨어졌다. 최성철 동부기술교육원 건물보수과 교수는 "경기가 어렵다 보니 직업 교육도 창업보다는 취업이 쉽고 정년 없이 오래 일할 수 있는 분야가 인기"라고 했다.

2일 서울 강동구 동부기술교육원의 전기계측제어과 학생들이 작업을 마친 전기설비제어판을 김이훈(왼쪽 아래) 교수에게 가져가 검사를 받고 있다. 취업난과 자영업 불황이 계속되면서 동부기술교육원에는 기술을 배우려는 20대와 화이트칼라 퇴직자가 늘고 있다.
2일 서울 강동구 동부기술교육원의 전기계측제어과 학생들이 작업을 마친 전기설비제어판을 김이훈(왼쪽 아래) 교수에게 가져가 검사를 받고 있다. 취업난과 자영업 불황이 계속되면서 동부기술교육원에는 기술을 배우려는 20대와 화이트칼라 퇴직자가 늘고 있다. /이진한 기자
서울 강동구 고덕동에 있는 동부기술교육원 강의실에서 만난 사람들은 경력이 다양했다. 이경훈(55)씨는 카드회사에 다니다 퇴직하고 조경관리과에 입학했다. 이씨는 "아파트 단지를 관리하는 조경 기술자 가운데는 일흔다섯 넘는 사람도 많다"며 "경기가 좋지 않아 식당 창업 등은 현명한 선택이 아닌 것 같았다"고 했다.

냉동공조설비제어전문가 과정에 등록한 노대균(43)씨는 페인트 유통업을 했었다. "대학에서 IT를 전공했지만 관련 업종에 취직하기 어려운 상황이고, 매달 직원 월급 주기도 어려운 자영업은 더는 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수강생 중에는 20대도 많다. 전기계측제어과 교육생 40명 중 19명은 20대다. 5년 전보다 두 배로 늘었다. 이 과정을 마친 사람들은 건물 전기시설을 관리하거나 공사장에서 일한다. 이날도 드라이버로 얽히고설킨 전선을 풀고 조이고 있었다. 건물보수과는 실습생 40명 가운데 6명이 20대였다. 5년 전에는 20대 교육생이 한 명도 없었다.

이런 변화는 취업난이 심해지고 최저임금 인상 여파로 자영업 창업도 주춤하면서 나타났다. 서울시 관계자는 "동부기술교육원뿐만 아니라 중부·남부·북부 등 다른 기술교육원에서도 창업에 필요한 기술 교육 과정의 지원자 수가 줄어드는 추세"라며 "요즘에는 창업이나 취미 관련 기술보다 취업이 바로 되는 기술을 선호한다"고 했다. 화이트칼라(사무직) 출신 퇴직자들은 "건축·조경·전기 기술은 일단 배워놓으면 정년과 고용 불안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블루칼라 선호 현상은 미국 등 외국에서도 나타난다. 미국 노동통계국은 2022년까지 전체 일자리가 11% 늘어나는 동안 배관공이나 설비기술자 일자리는 21%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경제 위기 와중에도 배관공 일자리와 소득이 늘어났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고 경기가 바뀌어도 막힌 파이프를 뚫고 건물에 배관 작업을 하려는 수요는 늘 있다는 것이다.

사설 학원에서도 전기 기술이나 도배를 배우려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다. 서울 은평구의 한 인테리어기술전문학원은 한 반 정원 15명씩 일곱 반을 운영하는데 올해는 지원자가 많아 일부를 다른 학원으로 보냈다고 한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그간 단순 육체노동이라고 폄훼됐던 일들이 최근 취업이 어려워지면서 땀 흘리며 성실히 일하면서 어느 정도 임금을 받을 수 있는 분야로 다시 주목받게 된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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