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수의 ‘고통 없는 죽음’ 요구는 정당한가

입력 2019.04.02 15:23

살인·강간·납치 혐의로 미국 중서부 미주리주(州)에서 1996년 사형 선고를 받은 러셀 버클루(50)는 2014년 5월에 사형 집행을 앞두고 있었다. 버클루는 독극물을 주입하는 방식으로 사형이 집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버클루는 사형 집행을 독극물 주입 대신 독가스를 이용한 방식으로 바꿔 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자신의 선천적 질병인 해면상 혈관종 때문에 사형 집행에 쓰이는 치명적 약물 ‘펜토바르비탈’이 주입되면 자신의 얼굴·머리·목·목구멍에 있는 피로 가득 찬 종양을 파열시켜 극심한 고통을 가할 것이라 했다. 펜토바르비탈은 일정량 이상 투약하면 호흡을 어렵게 해 사망에 이르게 하는 약물로, 주로 안락사에 쓰인다.

미주리주에서는 독극물을 주사하거나 가스를 사용해 사형을 집행할 수 있는데, 실제로는 독극물 주입 방식으로만 사형 집행이 이뤄진다. 버클루는 독극물 주입 사형은 ‘잔인한 형벌’을 금지한 수정헌법 제8조를 위반한다고 주장했다.

1996년 살인·강간·납치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사형수 러셀 버클루(50). /AP
미 연방대법원은 1일(현지 시각) 버클루의 이 요구를 거부하며 "미국 헌법은 사형수에게 고통 없는 죽음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은 보수 법관 5명, 진보 법관 4명으로 짜인 대법원의 이념 구도가 그대로 반영됐다. 재판부는 반대 5명, 찬성 4명으로 버클루의 요구를 거부했다.

보수 법관들은 버클루의 소송 제기를 형 집행을 미루려는 ‘시간 끌기’ 전략으로 판단했다. 이들은 버클루가 (독극물 주입이 아닌) 다른 방식을 통한 사형 집행이 상당한 고통의 위험을 줄여준다는 것을 직접 증명해야 했으나, 충분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봤다. 버클루가 요구한 대안인 가스가 덜 고통스러울 것이란 증거도 없다고 했다.

다수 의견을 반영한 판결문을 쓴 보수 진영의 닐 고르수치 법관은 "수정헌법 제8조는 수감자에게 고통 없는 죽음을 보장하지 않는다"며 "이는 물론 살인 피해자를 포함해 많은 사람에게도 보장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버클루가 20년 넘게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동안 잇딴 소송으로 집행을 연기시켜 왔다고도 했다. 고르수치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2017년 지명한 대법관이다.

진보 성향 법관들은 버클루의 건강 상태를 감안할 때 질소 가스를 이용한 사형 집행이 허용돼야 한다고 했다. 이 방식은 다른 세 개 주에서 허용되고 있다. 또 버클루가 사형 집행을 미뤄달라고 하지도, 거부하지도 않았으므로 그가 선호하는 가스 방식으로 사형이 집행될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판결이 이뤄진 후 공화당원인 에릭 슈미트 미주리주 법무장관의 대변인은 "미주리주와 피해자들은 지난 23년간 정의롭고 합법적인 사형 선고가 집행되길 기다렸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버클루는 자신의 전 여자친구 스테파니 레이와 동거하던 남성 마이클 샌더스를 총으로 쏴 살해했다. 전 여자친구 레이를 납치·강간했으며 샌더스의 여섯 살 난 아들도 총으로 쐈다. 체포 전 경찰에게 부상을 입히기도 했다. 그는 1996년 살인·강간·납치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복역 중 탈옥해 레이의 어머니를 쇠망치로 내려치기도 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