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만 쓰는 ‘연호’…나루히토 일왕 ‘레이와’ 시대 열리기까지

입력 2019.04.01 12:14 | 수정 2019.04.01 12:26

올해 5월 1일 나루히토(德仁·59) 새 일왕의 ‘레이와(令和·れいわ)’시대가 열린다. 4월 1일 일본 정부는 나루히토 새 일왕 재임 기간의 연호(年號)가 질서·평화·조화를 뜻하는 레이와로 결정됐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아키히토(明仁) 현 일왕의 헤이세이(平成) 시대가 저물고 일본은 ‘레이와 시대’를 맞게 됐다.

일본은 현재 전 세계에서 연호를 사용하는 유일한 국가다. 기원전 140년 중국 한무제(漢武帝)가 ‘건원(建元)이란 연호를 처음 쓴 이후 중국을 비롯해 베트남과 우리나라 등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에서 연호를 썼으나, 지금은 일본만 쓰고 있다.

이번에 채택된 나루히토 일왕 시대의 연호 레이와는 645년 일본의 첫 연호인 ‘다이카(大化)’ 이후 248번째 연호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이 2019년 4월 1일 오전 11시 40분쯤 기자회견을 열고 오전 임시 각료회의에서 나루히토 새 일왕 시대의 연호를 ‘레이와(令和·れいわ)’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아사히
일본은 예수가 태어난 해를 기준으로 삼는 서력(西曆)과 함께 연호를 널리 사용하고 있다. 연호란 특정 왕(군주)의 즉위 후 통치 기간을 일컫는 역법으로, 여러 기년법(紀年法·특정 시점 기준으로 햇수를 세는 방법) 중 하나다.

일본에서는 새 왕이 즉위하면 연호부터 달라진다. 나루히토의 할아버지인 히로히토(裕仁) 일왕은 ‘쇼와(昭和)’, 아버지인 아키히토(明仁) 일왕은 헤이세이 연호를 썼다. 히로히토 일왕이 사망한 1989년은 ‘쇼와 64년’ 겸 ‘헤이세이 원년’이다. 헤이세이 시대는 이달 30일 아키히토 현 일왕의 퇴위와 함께 마무리된다.

고대부터 중세까지는 한 일왕이 연호 여러 개를 쓰는 일도 빈번했지만 근대부터 일왕 한 사람이 연호 한 개만을 쓰게 되면서 정체성 역할도 하고 있다. 또 연호는 일왕이 죽은 후 쓰이는 이름이기도 하다. 일왕이 살아 있을 땐 이름 대신 ‘긴죠(今上·지금 일왕)’라고 불리지만 숨지면 연호를 따서 불리기 때문이다. 히로히토 일왕은 그의 연호대로 ‘쇼와 일왕’이라고 불린다.

일본에서 연호가 갖는 의미는 크다. 일본은 관공서 공문부터 개인 은행 통장, 대출 신청서, 부동산 계약서까지 각종 문서에 서력보다 연호를 더 많이 쓰고 있다. 연호가 바뀌면 그 모든 문서가 따라서 바뀌어야 한다. 일본 공영방송 NHK와 보수 성향 산케이신문 등은 서력보다 연호 표기를 선호하고 있다. 아사히신문이 지난달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상생활에서 나루히토 일왕 시대의 새 연호를 사용하겠다는 응답은 일본 국민의 40%에 달했다.

일본 국민도 연호에 열광한다. 이번에 헤이세이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되면서 연호 마케팅이 성행한 게 대표적이다. 아키히토 일왕이 고령을 이유로 ‘생전 퇴위’를 선포하고 장남인 나루히토에게 일왕 자리를 넘겨주자 지난해 하반기부터 ‘헤이세이 최후’ 마케팅 열풍이 불었다. ‘헤이세이 최후의 여름 불꽃놀이’ ‘헤이세이 최후의 크리스마스’ 등 행사마다 헤이세이라는 문구가 들어갔다. 나루히토 일왕이 즉위하는 5월 1일은 휴일로 지정됐다.

1989년 1월 오부치 게이조 당시 일본 내각 관방장관이 아키히토 일왕 즉위에 맞춰 연호 ‘헤이세이(平成)’를 발표하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연호를 정하는 원칙은 까다롭다. 일본 정부는 1979년 정한 6가지 기준에 따라 연호 후보를 검토해 왔다. 연호를 제정할 땐 △두 글자 한자로 이뤄진 단어일 것 △국민의 이상(理想)에 어울리는 좋은 의미일 것 △쓰기 쉬울 것 △읽기 쉬울 것 △사회에서 널리 쓰이지 않는 단어일 것 △지금까지 연호나 시호(諡號·왕 등이 죽은 후 공덕을 칭송해 붙인 이름)로 사용되지 않은 단어일 것이 고려돼야 한다.

알파벳 초성도 따져야 한다. 근대 이후의 연호 메이지(明治)·다이쇼(大正)·쇼와·헤이세이의 알파벳 초성 M·T·S·H와 새로운 연호의 알파벳 초성이 겹치지 않아야 한다. 컴퓨터 프로그램 등에서 연호를 알파벳 초성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다.

그간 일본의 연호는 주로 중국 고전에서 인용돼 왔다.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인용 횟수가 가장 많은 건 시경·서경·역경·춘추·예기를 뜻하는 중국 고전 ‘오경(五經)’이다. 서경은 총 36회, 역경은 27회 인용됐다. 이번에는 최초로 ‘일본 고전’에서 연호가 채택됐다.

일본 언론 보도 등에 따르면 지금까지 일본 연호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한자(漢字)는 ‘영(永)’으로 총 29회 사용됐다. 다음으로 ‘원(元)’과 ‘천(天)’이 각각 27회, ‘치(治)’가 21회, ‘응()’이 20회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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