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선입견 없이, 탈북민에게도 끊임없이 도전 기회 제공"

조선일보
입력 2019.03.29 03:12 | 수정 2019.03.30 11:24

[청년 미래탐험대 100] [10] 외국서 北인권 돕는 사람들, LA 링크 본부에 간 25세 장휘씨
텍사스 부시센터 1호 장학생이자 최초의 탈북자 직원인 조셉 김

"탈북 도중 중국 심양의 미국 영사관에서 '신입사원'이란 한국 드라마를 봤더랬습니다. 그런데 주인공들이 죄다 영어 때문에 고생하더군요."

지난 3일 미국 텍사스 댈러스의 미국 정책연구소 부시센터에서 만난 조셉 김(29)씨가 "어차피 한국 가도 영어 때문에 고생해야 한다면 바로 미국으로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 탈북 후 미국행(行)을 택했다"고 말했다. 부시센터는 미국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퇴임 후 2009년 설립한 싱크탱크다. 현재 미국엔 최소 약 500명의 탈북자가 있다고 알려졌다.

자유조선 리더 에이드리언 홍 창, 2013년 TED 사회 맡아 반북(反北) 단체 ‘자유조선’의 리더로 알려진 에이드리언 홍 창(오른쪽)이 2013년 6월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열린 세계적 지식 공유 강연회 ‘테드(TED)’사회를 보고 있다. 왼쪽은 강연에 나선 조셉 김 미 부시센터 인권담당 보좌관.
자유조선 리더 에이드리언 홍 창, 2013년 TED 사회 맡아 - 반북(反北) 단체 ‘자유조선’의 리더로 알려진 에이드리언 홍 창(오른쪽)이 2013년 6월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열린 세계적 지식 공유 강연회 ‘테드(TED)’사회를 보고 있다. 왼쪽은 강연에 나선 조셉 김 미 부시센터 인권담당 보좌관. /TED 캡처

조셉은 미국 내에서 북한 인권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인사로 꼽힌다. 2013년엔 스페인 대사관 습격 사건의 리더로 유명해진 에이드리언 홍창과 함께 명사 강연 프로그램 테드(TED)에 출연해 북한 인권의 실상을 알리기도 했다.

그는 2006년 링크(LiNK)의 도움으로 중국을 거쳐 미국으로 왔다. 난민 자격이었다. 북한에서 수십만~수백만명이 아사(餓死)한 '고난의 행군' 시기였던 2003년 조셉은 아버지가 굶어 죽는 걸 목격하고 북한을 떠나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2006년 중국을 거쳐 2007년 미국에 정착했다. 그는 탈북 후 받은 충격을 이렇게 묘사했다. "탈북에 성공해 중국 땅을 처음 밟고 나서 중국에서 살 빼는 (다이어트) 약이 유행한다는 사실에 너무 놀랐습니다. 북한에선 사람들이 굶어 죽고 있었는데요!"

조셉은 부시센터가 시행한 장학 프로그램의 첫 수혜자이지만 미국 적응이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고 했다. 영어가 쉽게 늘지 않았고 형편없는 SAT(미국 수학 능력 시험) 점수를 받아 대학 진학에 실패하기도 했다.

그는 "미국이 완벽한 사회는 아니었지만 선입견 없이, 도전할 기회만큼은 우리에게도 끊임없이 제공했다. 또 계속 도전하는 사람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곳이었다"고 말했다. 조셉의 꿈은 통일 후 북한으로 돌아가 선생님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북한 학생들을 돕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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