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진은 "말 대신 온몸으로 나를 표현할 수 있어 발레에 푹 빠진 것 같다"고 했다.

"캐스팅 명단이 나왔을 때 '왜 내 이름이 저기 있지?' 했어요. '백조의 호수'는 워낙 유명하고 큰 작품이니까요. 게다가 파트너도 (수석 무용수) 콘스탄틴 오빠라니!"

올해 유니버설발레단(UBC)의 첫 작품 '백조의 호수'에서 주인공 오데트·오딜 역에 낙점된 김유진(18)의 앳된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쑥스러워하는 모습만 보면 영락없는 10대지만, 그는 최근 발레계가 가장 주목하는 '무서운 신예'다. 2017년 만 16세에 UBC에 입단해 국내 최연소 프로 데뷔 기록을 세웠고, 지난해 4월 러시아 3대 콩쿠르 중 하나인 아라베스크 국제발레콩쿠르에서 주니어 여자 1위를 포함해 3관왕을 차지했다.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 수석 무용수 김기민(27)이 7년 전 그랑프리를 수상한 대회다. 이번 공연에서 그는 수석 무용수 홍향기, 솔리스트 한상이·최지원과 함께 드미 솔리스트로는 유일하게 주인공으로 발탁됐다. 만 18세에 프로 발레단에서 '백조의 호수' 전막 공연의 주역을 맡은 것은 국내에선 처음이고, 해외에서도 전례를 찾기 어렵다.

'백조의 호수'는 클래식 발레의 정수로 손꼽히는 작품. 마법에 걸려 백조로 변한 오데트 공주와 지그프리트 왕자의 사랑, 딸 오딜을 내세워 왕자를 속이는 악마 로트발트의 음모가 펼쳐진다. 화려한 백조 군무와 파드되(2인무)뿐 아니라 1인 2역인 오데트·오딜이 선보이는 백조-흑조 안무의 강렬한 대비가 이 작품의 포인트. "순수한 백조와 도도한 흑조를 확실히 대조되도록 표현하는 데 중점을 뒀다"는 김유진은 "왕자를 춤으로 유혹해야 하는 흑조가 훨씬 어렵다"며 웃었다.

다섯 살 때 어린이집에서 발레를 처음 접한 김유진은 5년 뒤 부모님에게 "발레를 전공하고 싶다"고 선언했다. "부모님은 '공부나 하라'며 말리셨지만, 제 고집을 꺾지 못하셨죠." 타고난 신체 조건과 하나에 빠지면 무섭도록 파고드는 성격 덕에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중 2 때 그를 발탁한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 출신 이원국 단장은 학교를 그만둘 것을 권유했다. "학업에 쏟을 시간을 발레에 투자하면 훨씬 성장할 거라고 하셨어요. 믿고 따랐죠." UBC 입단은 2016년 말 문훈숙 단장이 김유진의 공연을 본 후 제안해 이뤄졌다. 문 단장은 "어리지만 표현력이 성숙하고, 잘 떨지 않는 당찬 성격이 큰 장점"이라고 했다.

UBC의 유일한 10대 단원인 김유진은 "언니 오빠들하고만 지내다 보니 아이돌은 물론 또래 친구들이 쓰는 말도 잘 모른다"고 했다. "가끔은 평범하게 학교 다니는 친구들이 부럽지만, 저도 모르게 연습실 가서 연습하고 있더라고요." '인생 경험 부족'이 가장 큰 숙제라는 이 소녀는 다부진 목소리로 "앞으로는 '어린데 잘한다'는 말 대신 그냥 '잘한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 했다. 4월 5~13일 서울 유니버설아트센터, 1544-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