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딸기도 이름이 있다

조선일보
  • 이해림·'탐식생활' 저자
    입력 2019.03.25 03:00

    이해림·'탐식생활' 저자
    이해림·'탐식생활' 저자
    "딸기 종류가 이렇게 많다고?" 대다수가 이렇게 반문하던 시절, 김춘수의 시 '꽃'을 빌려 딸기의 이름을 부르자고 글을 쓴 적 있다. 2년 전 이맘때였다.

    이후 신기할 정도로 세상이 바뀌었다. 자본의 욕망이란 어찌나 원초적인지! 유통업계에선 이제 '품종'을 새로운 마케팅 키워드로 활용한다. 꿀딸기, 왕딸기, 설탕 딸기, 심지어 '다라 딸기'같이 무의미한 관용구가 난무하던 것은 옛말. 이제 설향, 죽향, 장희, 육보, 금실, 킹스베리, 아리향 등 제대로 품종 이름이 붙었다. 어느 대기업 계열 수퍼마켓에선 두 가지 딸기 품종을 묶은 세트상품을 출시하며 낸 보도자료에서 내가 쓴 품종 설명을 베끼기도 했다. 뿌듯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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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 모두가 바뀐 건 아니다. "이게 무슨 품종이죠?"라고 물었을 때 돌아오는 답은 여전히 많은 곳에서 "왕딸기" 아니면 "몰라요"다. "정말 품종마다 맛이 그렇게 달라요?" 하는 질문도 받는다. "둘 이상 품종을 한데 놓고 맛보면 누구나 알 수 있다"는 게 나의 답이다. 설향은 복숭아를 연상시키는 향에 신맛과 단맛이 잘 어우러지고 싱그러운 수분이 가득하다. 죽향은 꿀같이 복합적인 향을 지녔고 적당한 신맛이 단맛을 받쳐준다. 장희는 서양배처럼 무른 질감에 수분이 풍부하고 신맛이 약하다. 육보는 꽃처럼 향기롭고 연유같이 부드러운 단맛이 좋은데, 견과류의 고소함까지 뒤에 남는다. 금실은 장미 향에 단맛과 약한 신맛의 균형이 잘 맞으며 청포도처럼 신선한 느낌이다. 요즘 신품종으로 각광받는 킹스베리와 아리향은 각각 어린이 주먹만 하고, 오리알만 하다.

    또 많이 듣는 질문은 "그러면 어느 딸기가 가장 맛있어요?" "모든 딸기가 다 다르니 너도 옳고 너도 옳다"고 선비처럼 답하고 싶지만, 적당히 "설향이 가장 맛있다"고 답한다. 단맛·신맛의 비율과 질감이 한국인 입맛에 이상적이고 향도 풍부해 어떤 취향에나 무난히 만족스러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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