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계 노벨상, 속초가 휘어잡아드랬죠~"

입력 2019.03.25 03:00

이해랑연극상 특별상 배우 겸 연출가 장규호
강원극, 전국 수준으로 끌어올려… 청소년연극제 만들며 인재 육성도

"속초 연극은 선이 굵고 투박해요. 산 높고 바다 넓은 지리적 환경 때문인지 확 솟구치다 떨어지는 전개가 많죠. 관객들을 지루할 틈 없이 휘어잡는답니다."

강원도 속초 앞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카페에서 제29회 이해랑연극상 특별상 수상자 장규호(70)가 말했다. 속초에서 나고 자란 그는 배우와 연출을 오가며 일평생 속초 연극에 몸담았다. 전국연극제에서 대통령상을 비롯해 남우주연상·연출상 등 각종 상을 휩쓸며 강원 연극을 전국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그는 "이해랑연극상은 연극인들에겐 노벨상 같은 존재"라며 "수상 소식에 며칠간 꿈꾸는 기분이었다"며 껄껄 웃었다.

장규호는 “이해랑연극상이 지방 연극인들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내게 상을 줬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장규호는 “이해랑연극상이 지방 연극인들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내게 상을 줬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양승주 기자
고등학생 때 우연히 '단종애사'의 세조 역할을 맡아 연극에 입문했다. "세조 역할이던 친구가 연기를 하도 못하기에 '그걸 연극이라고 하느냐'고 핀잔을 줬어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그럼 네가 해 봐라' 하시대요. 별생각 없이 대본을 읽었는데, 뜻밖에도 '잘한다'는 칭찬을 들었죠." 고등학교를 마친 뒤 연극을 제대로 시작해보려 했지만, 속초엔 그를 지도해줄 만한 사람이 없었다. "무작정 권오일·차범석 선생 등 서울에 계신 연극계 어른들을 찾아갔어요. 일면식도 없는 청년의 부탁에 몇 번이고 속초까지 오셔서 기초부터 가르쳐주셨죠."

이후 10년간 한국연극협회 속초지부장을 맡아 전국연극제에 참가했다. 1986년 참가 첫해부터 단체 장려상을 받았고, 1991년 '한씨 연대기'로 대통령상을 받았다. '그날 그날에'(1988)로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극단 '굴렁쇠' 연출을 맡아 '그대여 또다시 바다로 가거든'(1996)으로 우수상을, '택시드리벌'(2003)·'붉은 훈장'(2006)으로 금상을 받았다.

청소년연극제도 만들었다. "1991년 전국연극제에서 대통령상 받으니 강원도 전체가 들썩였어요. 도지사가 원하는 걸 묻기에 '청소년연극제를 하고 싶으니 지원해달라'고 했죠. 좋은 후배들을 발굴해야 속초 연극의 명맥을 이을 테니까요." 이듬해 시작된 강원도 청소년연극제는 1997년 창설된 전국청소년연극제의 모태(母胎)가 됐고, 연극제에서 수상한 학생들이 대학 연극영화과에 대거 진학하며 인재 풀을 넓히는 결과로 이어졌다.

3년 전부터 그는 배우로 복귀했다. 올해도 두 편의 연극에 출연한다. "천성이 배우예요. 이젠 믿을 만한 후배 연출가가 많으니 본업으로 돌아온 거죠. 제 몸이 허락하는 날까지 무대에 서는 것이 마지막 꿈입니다." 일흔 노장(老將)의 눈빛이 신인처럼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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