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경쟁 후보는 문 대통령의 친구… 靑, 경찰 수사에 어떤 역할 했는지 밝혀야"

조선일보
  • 최보식 선임기자
    입력 2019.03.25 03:13

    경찰 수사에 도둑맞은 선거였나… 김기현 前 울산시장

    김기현 울산시장이 자유한국당 후보로 공천이 확정된 작년 3월 16일, 바로 그날 울산지방경찰청은 김 시장의 비서실 등 5곳을 전격 압수 수색했다. 선거 기간 내내 김 시장을 둘러싼 수사는 계속됐다. 지지율에서 앞서 있던 그는 결국 선거에서 졌다. 승자(勝者)는 문재인 대통령의 친구인 송철호 민주당 후보였다.

    최근 검찰은 당시 경찰 수사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 99쪽의 '불기소 결정문'을 냈다. 경찰이 '증거가 부족해 무죄 선고가 뻔한 이 사건에 관해 아니면 말고식의 신중하지 못한 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것은 수사기관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울산시장 선거에서 결정적 영향을 끼쳤던 경찰 수사에 문제가 매우 많았다는 뜻이다. 검찰은 피의자에 대해 무혐의 결정도 내렸다.

    이미 버스는 떠났다. 김 전 시장은 억울하지만 원점으로 돌릴 수 없다. 언론 매체에서도 단발성 사건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이렇게 넘어가도 되는 사안일까. 민주주의 제도는 선거의 공정함으로 유지되는데 경찰이 '아니면 말고' 수사(搜査)로 선거에 개입한 것이 됐다.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일 수 있다.

    중앙선관위 고위 관계자도 이 점에 동의했다. "댓글 조작은 몰래 숨어서 이뤄졌지만 지금까지 수사 당국이 이렇게 대놓고 선거에 개입한 적은 없었다.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예상도 못했다. 현행법으로는 왜곡된 선거 결과를 원상 복구해줄 수 없다. 향후 수사기관이 이번처럼 합법을 내세운 선거 개입을 할 때 어떻게 대처할지 집중 논의해보겠다."

    당시 수사를 총지휘한 황운하 대전지방경찰청장은 얼마 전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의 입장을 옹호했다. 그래서 피해 당사자인 김기현(60) 전 시장을 만나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듣기로 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김기현 전 시장은 “울산경찰청 소속 지능수사대 6개 팀 중 3개 팀이 나를 타깃으로 수사했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경찰 입장에서는 혐의를 포착했으면 선거 기간이라 해도 봐주고 덮어줄 수는 없지 않은가?

    "선거 기간에는 중대 범죄나 선거 현행범이 아니면 수사를 하더라도 진행 사실을 알리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지금껏 이를 지켜왔다. 이번에 나온 검찰의 불기소 결정문에는 '경찰의 범죄 구성이 법리에 부합하지 않는다' '증거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았다'며 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건을 공정하게 제대로 수사해야 할 책임이 수사 당국에 있다'고 했다. 경찰 수사가 공정하지도 않았다는 지적이다. 무혐의 결론도 났다. 이에 대해 '그때 혐의가 있는 것 같아 수사했다'고 하면 책임 면피가 되는가."

    ―자유한국당 후보 공천이 확정되던 날에 맞춰 경찰이 압수 수색한 것이 묘하다는 느낌은 있다. 그 전에 어떤 낌새를 채지 못했나?

    "재작년 여름 황운하가 울산경찰청장으로 온 뒤로 '시장(市長) 뒷조사를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가 위에서 어떤 하명을 받았다는 얘기도 들렸다. 울산경찰청 소속 지능수사대 여섯 팀 중 세 팀이 나를 타깃으로 수사했다고 한다. 40~50명이 조사받았다."

    ―2017년 당신의 비서실장과 담당 국장이 아파트 공사 현장에 울산의 레미콘 업체가 납품할 수 있도록 해준 게 직권 남용 혐의로 경찰에 걸렸는데.

    "울산시 조례에 따른 적법한 업무 처리였다. 표창을 줘야 할 사안이다. 조례에는 '울산에 건물을 짓는 건설업자에게 하도급 납품을 울산 업체에서 받도록 시(市)가 권장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울산 시청에는 '지역 업체 권장' 팀이 있고, 나도 시장 이름으로 '지역 경제가 어려우니 울산 업체를 써달라'는 공한을 기업에 보내기도 했다."

    ―지자체마다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다 그렇게 하는데 왜 이게 문제가 됐는지 나도 의아스러웠다. 경찰은 '다른 지역 업체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공정거래위의 권고 사항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는데.

    "공정위 권고가 시 조례보다 상위법인가, 경찰이 헌법재판관도 아니고…. 이런 논리라면 지역 경제를 위해 목숨 걸고 뛰는 전국의 모든 광역단체장은 직권 남용을 하고 있는 셈이다."

    ―비서실장과 담당 국장이 대가로 레미콘 업체의 골프 접대를 받았고 이는 뇌물 수수라고 했다.

    "경찰이 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가 기각되자, 혐의를 입증하지 못한 채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그때 비서실장이 골프장에서 자신이 결제한 카드 영수증을 찾아내 제시했다. 접대 골프가 아니었다는 증거였다. 그러자 경찰은 '왜 영수증 자료를 뒤늦게 내느냐.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했다. 이게 정상적 반응인가. 검찰은 '혐의 입증이 부족하다'며 다섯 차례나 보완 수사 지시를 경찰에 했던 것으로 나온다. 경찰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기소 의견으로 넘겼다고 했다."

    ―접대 골프 얘기가 나온 김에, 황운하 당시 울산경찰청장도 재작년 11월 송철호 민주당 후보 등과 함께 골프를 쳤는데.

    "다른 참가자가 비용을 냈다. 나중에 문제가 보도되니까, 돌아오는 차 안에서 현금을 찔려줬다고 해명했다. 이런 그가 카드 영수증까지 나온 내 비서실장에 대해서는 영장을 신청했다."

    ―당신 형제의 비리 의혹과 관련된 경찰 수사도 있었다. '아파트 시행권을 확보해주면 대가로 30억원을 준다'는 건설업자와 용역 계약서를 작성한 동생이 그 사업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것인데.

    "토지 개발 컨설팅업을 하는 동생이 2014년 그런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상대 건설업자에게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한 달 뒤 계약 무효를 통보했다. 돈 한 푼 오가지 않았다. 업자도 수사기관에 '돈을 준 적은 없다'고 진술했다. 게다가 내가 시장이 되기 전에 이뤄진 일이었다. 그 뒤 해당 아파트 건축 사업에서 배제된 그 업자가 청와대와 검·경에 모두 진정서를 냈다. 그때 사정기관이 이미 내사해 종결했던 사건이다. 황운하 울산경찰청장이 오면서 이를 끄집어내 수사하도록 지시했다."

    당시 수사를 총지휘한 황운하 대전지방경찰청장.
    당시 수사를 총지휘한 황운하 대전지방경찰청장. /채승우 기자

    ―울산에서는 '도망간 김기현 시장 동생을 찾는다'는 식의 현수막이 걸렸다는데.

    "아무리 상대를 짓밟는 선거라고 하지만…. 고소장을 받고 동생이 자진 출두했다. 고소장은 자신의 억울함 호소와 피고소인에 대한 엄벌 요구를 위해 구구절절 작성하는 법이다. 하지만 이 고소장은 단 3쪽이었다. 도장이 아니라 무인(拇印)이 찍혀 있었다. 고소장이 울산경찰청에 접수된 바로 그 날짜에 당사자 소환장이 발송됐다. 경찰이 그 업자를 불러놓고 대신 고소장을 써주지 않았으면 행정 절차상 불가능하다. 아마 경찰이 이 업자에게 고소하도록 종용했을 것이다. 작년 말 이 업자는 다른 사기 혐의로 구속됐다."

    ―고소 사건은 어떻게 진행됐나?

    "경찰이 동생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검찰에서 기각됐다. 내 친형은 무혐의로 나왔다. 그래놓고 경찰청 공보관이 취재진 앞에서 '의혹을 벗기고 무혐의를 밝혀주는 것도 수사 결과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했다. 정말 '아니면 말고'식 아닌가."

    ―황운하 대전경찰청장은 얼마 전 기자회견에서 "추가 압수수색 영장 신청에 대한 검찰의 비협조가 있었다. 사실상 수사 방해가 있었다"고 했는데.

    "자기가 하면 무조건 영장을 다 발부해줘야 하나. 검찰의 비협조라…, 현 정권에서 검찰이 야당 편이 될 리가 없지 않은가. 이번 검찰 결정문에는 '아니면 말고 수사 관행은 옳지 않다' '무죄가 날 게 뻔한 사안'이라고 했다. 나도 판사 출신인데, 공문서에 이렇게까지 쓰지 않는다. 얼마나 경찰 수사가 이상했으면 그랬겠나. 검찰 결정문은 황운하의 불법·범법 행위에 대한 공소장으로 읽혔다."

    ―황운하는 "김 전 시장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수사할 수 있었지만 선거 후로 유보시켰다. 이런 사정을 잘 안다면 경찰에 고마워해야 한다"고 했다.

    "권력 자리에 있다고 이렇게 오만한가. 정말 내가 혐의가 있다면 선거를 마치고 수사하고, 입건해 처벌해야지. 안 하면 직무 유기 아닌가. 자기 마음대로 자기 편의대로 처벌하고 안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황운하는 "선거 과정인 점을 잘 인식하고 있었기에 엄정 중립을 지켰고, 조금이라도 편파 수사라는 오해를 사지 않도록 언론 노출도 극도로 자제했다"고 주장했는데.

    "사람을 죽여 놓고 '안 아프게 죽였다', 강도질 해놓고 '집은 불태우지 않았으니 다행인 줄 알아라' 하는 식이다. 하지만 검찰 결정문에는 경찰의 언론 플레이까지 다 적시해놓았다. 경찰은 수사 과정마다 일방적 혐의 사실을 다 흘렸다. 지역 언론은 균형 있게 보도하지 않았다."

    ―청와대 특감반 출신인 김태우 수사관은 한 인터뷰에서 "지방선거 전 다른 특감반원이 작성한 울산시장 수사 동향 보고서를 본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울산경찰청에서 올렸으면 문제 될지 모르나 특감반원이 정보 수집을 한 게 문제가 될까?

    "청와대 특감반원이 시중의 소문을 듣고 보고서를 작성한 게 아니라, 울산경찰청에 연락해 직접 물어본 것이다. 수사 상황을 보고받는 것은 개입과 같은 맥락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소관 업무를 벗어난 것이다. 송철호 후보는 문재인 대통령의 친구다. 청와대가 당시 경찰 수사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밝혀져야 한다."

    ―황운하는 "선거 패배 책임을 지극히 정상적이고 절제된 방법으로 진행된 수사 탓으로 돌리는 것은 민의를 왜곡하는 대단히 무책임한 주장"이라고 했는데?

    "작년 2월 지지율 조사에서 나는 확고부동 1위였다. 경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판도가 바뀌었다. 상대 후보는 '시청과 시장 비서실이 압수 수색 당하고도 뻔뻔하게 출마했다'며 땅 투기 의혹, 친·인척 비리 등을 열거했다. 울산 사람들은 '깨끗한 척 혼자 다 하더니만 많이 해처먹었네'라고들 했다. 어떻게 선거가 되겠나."

    ―현행법상 이제 와서 원상 복구도 안 되고….

    "정말 기가 막힌다. 내 팔자 탓을 해야 하나. 당시 황운하 등에 대해 직권 남용으로 검찰에 고발했지만, 1년이 되도록 수사하지 않고 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