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1186] '인사하는 사람'의 사연

입력 2019.03.25 03:14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콘텐츠학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콘텐츠학

1980년대 후반 경남 김해에서 진영 가는 쪽에 묵담(默潭)이라는 선생이 있었다. 아집이 강한 사람이나 마음속에 '나 잘났다' 하는 마음이 숨어 있는 사람이 묵담을 찾아오면 어김없이 박살을 내는 초식이었다. 그 시절 서울대 미대에서 조각을 공부하던 대학생 유영호는 방학 때마다 묵담 선생을 찾아가서 화장실 청소도 하고 심부름도 하였다. 어느 날은 마음속에 살기를 품고 있던 사람이 묵담을 찾아왔다. 이야기를 하던 중에 묵담은 "당신은 칼이다"라고 하면서 부엌칼을 그 사람 손에 쥐여주었다. 곁에 있던 유영호는 부엌칼을 쥔 그 사람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장면을 보고 소름이 끼쳤다.

스스로가 공부 많이 한 스승이 되겠다는 자부심이 가득했던 청년이 찾아왔을 때에는 그 사람 손에다가 붓을 쥐여주었다. 세월이 흘러 그 사람은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유영호는 대학 졸업하고 5년 동안 묵담 밑에서 밥하고 청소하면서 그 문하에서 놀았다. 유영호에게는 100일 동안 매일 소주 네댓 병을 마시게 하고 유행가를 목청 터지도록 부르도록 하는 방편을 썼다. 모든 이원성(二元性)을 깨는 아드바이타(advaita) 요기이기도 했던 묵담 밑에서 시달렸던 유영호는 스승의 만류를 뿌리치고 문하를 떠나 여기저기를 떠돌았다.

어느 날 전남 완도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가던 유영호는 지리산과 섬진강물이 보이는 섬진강 대교를 건너고 있었다. 평소 외우고 있던 임제록(臨濟錄)의 어느 한 구절을 떠올리고 있었는데, 그 순간 '태공(유영호의 법명), 태공'하고 부르는 스승의 목소리가 천둥처럼 들렸다. 그러고 나서 유영호는 버스 안에서 2시간 정도가량 까무러쳐 버렸다. 이 체험이 조각상 '인사하는 사람(그리팅 맨)'을 만드는 밑천이 되었다. 남자가 서서 공손하게 인사하는 조각이다. 19세기 조각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20세기는 브롭스키의 '망치질하는 사람', 21세기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의 마음을 표현한 '인사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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