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영혼 팔았다, 폰 샤미소 '그림자를 판 사나이'

  • 뉴시스
    입력 2019.03.24 08:23

    '그림자를 판 사나이', 책
    "벗이여, 만약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어 하는 이들이라면 부디 무엇보다도 그림자를 중시하고, 그 다음에 돈을 중시하라고 가르쳐 주게나. 물론 자네가 단지 자기 자신, 그리고 더 나은 자기 자신과 함께 살고 싶다면, 자네에게는 그 어떤 충고도 필요 없겠지만."

    프랑스 태생의 독일 시인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1781~1838)의 '그림자를 판 사나이'가 번역·출간됐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그늘을 예견한 19세기 독일소설이다.

    주인공 '슐레밀'이 자신의 그림자를 정체불명의 남자에게 팔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궁핍했던 그는 그림자를 판 대가로 금화가 고갈되지 않는 마법의 주머니를 얻는다. 그 주머니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부러움을 얻으며 호화로운 생활을 누린다. 그러나 그림자가 없이는 사회 구성원 지위를 얻지 못하며 사람들에게 혐오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때부터 비극이 시작된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백작으로 알고 추앙하지만 정작 그는 그림자때문에 하인의 도움 없이는 방 밖으로 나가기도 어렵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에게도 온전히 다가가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아야 하는 비참한 신세가 된다. 결국 그림자가 없다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발각되고, 마법 주머니를 통해 쌓아 올린 자신의 왕국에서 쫓겨난다. 그에게서 그림자를 사 간 남자는 자신에게 영혼을 팔면 그림자를 되돌려 주겠다고 제안한다. 그는 이를 거절하고 방랑길에 오른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그림자의 의미다. 보통 존재의 어둠을 상징하는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지만 이 소설에서는 조금 다른 의미로 쓰인다. 슐레밀이 그림자를 잃어버리고 사회에서 추방당한 것을 생각해보면 바로 답이 나온다. 그림자는 사회에 편입되기 위한 일종의 자격처럼 작용한다.

    주인공은 그림자를 잃어버리고 절망에 빠지지만, 결국 사회에 섞이지 않은 채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작가의 이력과 결부시키면 더욱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샤미소는 프랑스의 귀족 출신이지만 프랑스 혁명때문에 독일로 망명해야 했다. 그리고 평생을 독일인으로 살았다. 이런 배경으로 인해 그는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서 경계인일 수밖에 없었다. 슐레밀도 사회에 편입되지 못하고 경계에 머문다. 소설의 주인공과 작가의 모습이 많이 닮아있다.

    황금만능주의에 대한 풍자도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이다. 작가는 자신의 존재를 버리면서까지 돈을 추구하는 황금만능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작품 전면에 띄우고 있다.

    "황량한 들판에 홀로 남은 나는 많은 눈물을 흘렸으며 내 초라한 마음은 알 수 없는 불안한 압박감으로부터 가벼워졌다. 이 북받치는 초라한 상태가 어떤 한계에 부딪힐지, 어떤 결말을 맞게 될지, 그리고 어떤 목표에 다가갈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 미지의 남자가 내 상처에 부어 놓은 새로운 독을 나는 격렬한 갈증으로 다시 마셨다."

    "당신을 그림자에 붙잡아 두어야만 저에게서 도망가지 않겠지요. 당신처럼 부유한 사람은 그림자를 필요로 하는 법입니다. 당신이 그 점을 일찍 깨닫지 못했다는 점, 그것이 다만 비난 받을 일입니다." 최문규 옮김, 220쪽, 1만3000원, 열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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