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한옥에서도 어슬렁, 일본 뒷골목에서도 어슬렁

조선일보
  • 한은형 소설가
    입력 2019.03.22 15:38

    [한은형의 애정만세]

    "도쿄 거리를 산책하는 것은, 살아온 생애에 대한 추억의 길을 더듬는 것과 같다. 오늘 지나온 길이 다음엔 필시 주택이나 공장이 돼 있겠지…." 나가이 가후의 책 '게다를 신고 어슬렁어슬렁'의 한 구절. 나가이 가후는 지붕, 공터, 도랑에 웃자란 잡초를 따라 산책하며 시간의 흔적을 느낀다. 사진은 일본의 어느 한적한 뒷골목. 박쥐우산을 쓰고 길을 따라 걷는 이들의 뒷모습에 그윽함과 쓸쓸함이 배어 있다. / 언스플래시닷컴
    스무 살까지 한옥에서 살았다. 그러니 "나는 한옥에서 이 책을 번역했다" 같은 문장을 보면 잠시 숨을 내려놓게 된다. "통장에 들어오는 돈은 뻔하지만 한옥에서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을" 가진 이 넷이 모여 방 한 칸을 작업실로 나눠 쓰고 있다고 했다. "낮에는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눈을 쉬게 하고 밤에는 오늘의 달이 초승달인지 반달인지 보름달인지 혹은 구름 뒤에 숨은 부끄러운 달인지 확인"한다는 문장을 보는데 내 유년의 구름과 달이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이 문장이 정말 좋았다. "작은 서민 한옥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에는 반드시 골목길이 있다. 사람 하나가 겨우 지나다닐 고불고불한 골목길에는 빨래가 널려 있기도 하고 빨갛고 노란 설거지용 수세미 같은 게 꽃같이 걸려 있기도 하다. 겨울밤 골목길 가로등에 눈이 내리면 그 아래를 움츠리며 걸어가는 사람의 뒷모습은 한 편의 시 같다." 글을 쓴 사람은 번역가 정수윤. 이 역자 후기는 나가이 가후의 책 '게다를 신고 어슬렁어슬렁'에 실려 있다.

    서점에서 보자마자 이 책을 산 지 사 년 만에 꺼내 읽었다. 왜냐하면, 얼마 전 K와 술을 마시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아사쿠사에 일본 최고(最古)의 바가 있는데 이름이 가미야라고, 한자로는 '신곡'이라고 쓴다고 했다. 단테의 '신곡' 할 때 神曲이 아니라 神谷이라고 했다. 귀신의 골짜라기라니. 아, 이름을 듣자마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는 처박아 놓았던 나가이 가후의 이 책이 생각났다. 나가이 가후의 산책 코스에 아사쿠사가 있었던 것 같고, 지금이 이 책을 읽어야 할 적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가이 가후는 19세기에 태어난 일본 소설가다. 연보에 따르면, 17세에 퉁소와 한시 작법을 배우고, 18세에 유곽 출입을 시작, 20세에 만담가의 제자가 되고, 25세에 미국에 가서 영문학과 프랑스어를 청강하는 등등으로 이어지다 '게이샤 누구누구와 교제, 동거, 결혼, 이별, 교제, 동거…'가 반복되는 인생을 살았다. 그러면서 자신의 인생이 담긴 화류계 소설을 많이도 썼고, 무엇보다 산책자였다.

    나가이 가후의 책 '게다를 신고 어슬렁어슬렁'
    '게다를 신고 어슬렁어슬렁'이라는 제목처럼 나가이 가후는 게다를 신고 산책했다. "남달리 키가 큰데도 나는 항상 히요리게다를 신고 박쥐우산을 들고 걷는다"고 썼다. 별거 아닌 듯한 문장이지만 여러 가지를 알 수 있다. 일단, 히요리게다는 비가 오지 않는 날을 위한 게다다. 남자 중에서는 한량이, 여자 중에서는 물장사를 하는 이들이 신었다. 그리고, 박쥐우산이라 함은 당시 유한계급들이 쓰던 고급 우산이다. 히요리게다와 박쥐우산은 그럴듯한 짝이 아닌 것이다. 또, 비가 언제 와도 이상하지 않다는 생각으로 늘 우산을 들고 산책했다는 것이다. 또, 키가 컸다고 하는 말로 보아 키높이용으로 게다를 신지 않았다는 것. 이런 것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의 원제가 '히요리게다'다.

    그래서 나가이 가후가 어디를 산책하느냐? 코스를 짐작할 수 있는 목차를 보기로 하자. 히요리게다, 사당, 나무, 지도, 절, 물 그리고 나룻배, 골목, 공터, 벼랑, 언덕, 석양 그리고 후지산 풍경. 나와 상당히 취향이 겹친다. 백화점이나 빈티지 그릇 가게, 디앤디파트먼트, 트레이더스 같은 데를 산책하는 것도 좋지만 아무래도 골목과 절과 공터에서는 좀 다른 것들을 보게 되는 것이다. 나가이 가후는 공터를 산책하고는 이런 글을 쓴다. "나는 잡초가 좋다. 제비꽃, 민들레 같은 봄풀이나 도라지, 여랑화 같은 가을풀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잡초가 좋다. 공터에 무성한 잡초, 지붕에 난 잡초, 길가 도랑 주변에 자라는 잡초를 사랑한다. 공터는 말하자면 잡초의 화원이다. 비단처럼 가늘고 아름다운 '금방동사니' 이삭, 털보다도 부드러운 '강아지풀' 이삭, 따사롭고 연붉은 '개여뀌' 꽃, 산뜻하고 창백한 '질경이' 꽃, 모래알보다 작고 새하얀 '별꽃',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잡초도 제법 그럴싸하게 가련한 정취가 있지 않은가."

    최근에 나도 아주 인상적인 잡초를 보았다. 잡초는 붉은 벽돌을 뚫고 나와 내 키보다 높게 자라 있었다. 역시 공터에서였다. 정확히 말하면, 용산 미군 기지 안에 있는 공터에서였다. 그 공터 앞에는 일본군 감옥이 있었다. 일본군들이 가던 감옥이라고 했다. 적벽에 붙어 있던 이 안내문을 사진으로 찍었다. "일제시대 악명 높았던 서대문 형무소가 세워진 직후인 1909년 9월에 완성되었습니다. 약 4.8m의 붉은 벽돌 담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또한 철근 시멘트로 적벽돌 담장을 강화하였습니다. 담장에는 한국전쟁 당시의 탄흔을 볼 수 있습니다." 1909년에 일본군이 만들었다는 그 벽에는, 한국전쟁 당시 맞은 총알의 흔적과 철근과 시멘트로 보수한 흔적과 벽을 뚫고 나온 잡초가 한데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잡초가 어떻게 거기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는지, 언제 싹을 틔웠는지, 또 어떻게 그 벽을 뚫고 나왔는지 신기하고도 궁금해 한참을 보고 있었다.

    용산 미군 기지 버스 투어를 하던 날이었다. 아모레퍼시픽 사옥 옆의 14번 게이트를 통해 미군 기지로 들어갔다. 기지는 사우스포스트와 메인포스트, 캠프 킴과 캠프 코이너로 되어 있었다. 용산 기지는 거의 비어 있었다. 배럭, 메딕, 코미서리 등에서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드문드문 반바지를 입고 조깅하는 미군이 있었고, 마지막 코스였던 드래곤 힐 호텔 로비에는 상당히 많은 미군이 앉아 여가를 즐기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 용산 미군 기지 안에서 보았던 어떤 것보다도 내게는 이 붉은 벽이 인상적이었다. 왜냐하면, 오랫동안 이곳의 주인이었던 일본과 미국의 위세를, 그리고 한국전쟁을 겪은 흔적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보수한 시멘트와 철근이 뚫린 사이로 드러난 적벽이 그대로 남겨진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말끔히 보수하지 않았으면, 그래서 시간의 흔적을 지우고, 역사의 겹을 가리고, 잡초를 뽑아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도쿄 거리를 산책하는 것은, 내가 태어나 오늘까지 살아온 과거 생애에 대한 추억의 길을 더듬는 것과 같다. (…) 오늘 지나온 절 문이나 어제 쉬어갔던 길가의 거목도 다음번엔 필시 주택이나 공장이 되어 있을 거라 생각하면, 그다지 유서 깊지 않은 건물이나 오래되지 않은 나무도 왠지 그윽하고 쓸쓸한 심정으로 올려다보게 된다." 나가이 가후의 이 말처럼 나도 그윽하고 쓸쓸하게 시간을 더듬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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