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제주 올레가 규슈 올레한테 역전당하는 거 아니야?"

일본 규슈 올레의 22번째 코스인 '신구 코스' 개장식에 참석한 올레꾼들 사이 우려 섞인 농담이 나왔다. 실제로 지난 17일 후쿠오카현의 소도시 신구마치에서 열린 개장식에 1000여명의 사람이 몰렸다. 역대 개장식 중 최다 인원이다. 다 같이 "이치(1), 니(2), 산(3)"을 외치며 준비 운동을 시작하자 고요했던 마을이 들썩였다.

지난 17일 개장한 신구 코스에 이어 우레시노 코스를 걷고 있는 올레꾼들. 규슈 올레길은 자연경관을 즐기며 특색 있는 일본의 작은 마을 풍경을 둘러볼 수 있어 인기다. 지난해까지 45만5000여 명이 규슈 올레길을 걸었고 그중 30만명이 한국인이었다.

규슈 올레길의 상승세가 무섭다. 규슈 올레는 2012년 다케오 올레를 시작으로 올해 22번째 코스를 개장했다. 첫해 연간 방문객 2만2170명으로 출발해 2017년엔 7만7966명을 기록했다. 2018년까지 추산한 누적 방문객은 45만5000명. 이 중 30만명(66%)이 한국인이다. 규슈관광추진기구는 매년 100만엔(약 1000만원)의 로열티를 내고 '올레'라는 명칭부터 코스 조성 과정, 안내 표지까지 제주 올레를 그대로 수입한다. 일본 대지진 이후 관광객이 급감하자 한 해 100만명 가까운 여행자를 불러들이던 제주 올레 열풍에서 해법을 구한 것이다.

개장 후 관광객이 늘자 지자체 공무원들이 규슈 각지를 돌며 숨은 길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제주 올레는 각 현에서 추천받은 코스를 대상으로 엄격한 현장 심사를 거쳐 올레길을 선정한다. 이유미 제주 올레 일본지사장은 "재수·삼수 끝에 합격이 되면 감격해 눈물 흘리는 공무원들이 부지기수"라며 "이들은 자신들의 올레 합격 노하우를 다른 현과 시 공무원들과 공유하며 올레길을 계속 확산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규슈에서 시작한 올레는 지난해 혼슈로 입성, 미야기현에 첫 올레길을 냈고 올가을 두 개의 신규 코스를 개장한다.

반면 원조인 제주 올레길은 내리막에 접어들었다. 한때 119만명(2013년)을 넘었던 연간 방문객은 지난해 57만6934명으로 반 토막 났다. 제주 올레를 세 번 완주하고 규슈 올레 완주에 도전하는 김순임(53)씨는 "제주가 급격히 발전하면서 올레길 중간중간 카페와 신식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서 옛 분위기를 찾아보기 어려워졌다"고 했다. 저비용 항공사(LCC)의 후쿠오카 취항이 늘면서 값싸진 항공권도 규슈 올레 인기에 한몫했다. 11만원에 왕복 항공권을 샀다는 50대 한국인 관광객은 "항공권 가격은 비슷해도 제주도에 가면 바가지가 심한데 일본에선 사람들도 친절하고 훨씬 대접받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지역 장인들과 손잡고 특색 있는 볼거리를 개발하는 일본의 관광 진흥 정책과도 맞아떨어졌다.

산에서 바다로 도시를 가로지르는 신구 코스는 신구마치 오모테나시협회의 이케다 데페이(38)씨가 고안했다. 9개월간 삐죽삐죽 솟은 나무와 덤불을 치우고 가파른 곳엔 직접 계단까지 만들어가며 길을 살려냈다. 그는 "버스 이용률이 낮아 얼마 전 역(驛) 하나가 없어질 정도로 발길이 뜸했던 곳"이라며 "젊은 층이 떠나고 고령화되는 마을을 올레로 되살려 보고 싶었다"고 했다. '오모테나시'는 정성을 다해 손님을 맞이한다는 일본 접대 문화다.

현지 주민들의 친절한 환대는 규슈 올레길을 다시 찾게 만드는 또 다른 힘이다. 100년 넘은 고택들이 모여 있는 거리에 들어서자 자그마한 체구의 할머니가 집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올해 91세인 다카키 할머니는 "다리가 불편해서 다른 일은 못 도와주지만 인사라도 하고 싶었다"면서 "한국인 관광객이라니 더욱 반갑다"고 했다. 개장을 기념해 올레길 곳곳에 마련된 부스에선 주민들이 톳 크로켓, 딸기 크레페, 녹차 같은 지역 특산품을 나눠주며 올레꾼들을 반겼다. 시장 상인 오리타 미쓰코(66)씨는 "30년 동안 야채를 팔아 왔지만 이렇게 사람이 붐빈 적이 없었다"면서 "새로 난 길이 마을의 활기를 되돌려줘 고맙다"고 했다.

일본 내에서도 규슈 올레의 인지도는 높아지고 있다. 첫해 5000여명에 불과했던 일본인 방문객이 2017년 3만7000여명까지 증가했다. 올레의 상징인 조랑말 '간세'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온 히로미 이노우에(66)씨는 "규슈 올레를 두 번 완주하고 코스를 안내하는 가이드 자격까지 땄다"면서 "올레길 걷기가 내 건강 비결"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