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노력충' 이치로

입력 2019.03.23 03:05

이순흥 스포츠부 기자
이순흥 스포츠부 기자
최근 몇 년 새 등장한 신조어 중 '노력충(蟲)'이 있다. 노력만 강조하는 기성세대를 비꼬는 말로 개인의 능력보다 사회·구조적 요인이 현실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비슷한 의미로 '노오력'이란 단어가 있다.

이 논리로 따지면 일본 야구의 '전설' 스즈키 이치로(46)만 한 '노력충'이 없다. 그는 온전히 노력으로 아시아 선수가 MLB(미 프로야구)에서 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일본프로야구에서 9시즌간 최고 반열에 오른 그는 2001년 미국 진출을 선언했다. 근육질 홈런 타자가 즐비한 메이저리그에서 이치로는 왜소한 체구(180㎝·79㎏)였다. 하지만 실패할 것이란 예상을 깨고 데뷔 첫해 신인왕, 아메리칸리그 최우수선수(MVP)를 휩쓸며 야구 본토에 충격을 안겼다.

이치로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빅리그에서 생존했다. 전성기 시절 타석에서 1루까지 3.7초 만에 주파한 그는 빠른 발을 이용해 약 500개의 내야 안타를 생산했다. 어떻게든 배트에 공을 맞혀내며 18년간 빅리그 통산 3089안타를 올렸다. 일본 기록까지 포함하면 무려 4367개다. 프로야구 사상 그보다 많은 안타를 때린 이는 없다.

이치로는 무엇보다 많은 노력을 했던 선수였다. 기계 같은 일과를 반복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잠들고, 아내가 만들어주는 똑같은 음식을 먹었다. 제습 기능이 있는 캐리어에 배트를 담아 다닐 정도로 장비 관리에도 철저했다. 뉴욕 원정 당시 휴일에도 혼자 센트럴 파크에 나가서 허공을 향해 토스 연습을 하다가 산책 중인 동료에게 목격된 에피소드가 있다. 은퇴 직전까지 같은 체중을 유지한 이치로의 체지방률은 7%대라고 한다.

이치로는 2012 시즌 중반 뉴욕 양키스로 팀을 옮긴 후부턴 "언제든 해고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살았다"고 했다. 당시 39세였다. 그래서 스스로 끊임없이 채찍질했다. 그는 지난 21일 밤늦게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한 번에 높은 곳에 오를 수 없다. 매일 반복하는 일이 쌓이면 작은 벽을 넘게 된다.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런 이치로도 세월을 거스르지는 못했다. 고별 무대가 된 2019 메이저리그 개막 2연전에서 그는 5타수 무안타로 침묵했다. 도쿄돔 관중에게 인사하려고 모자를 벗자 하얗게 센 머리카락이 드러났다. 이치로의 눈에 눈물이 고였지만 참는 모습이 역력했다. 수백명의 취재진이 몰린 은퇴 회견에서 한 기자가 물었다. "적어도 50세까지 뛴다고 하지 않았나요." 이치로는 이렇게 답했다. "내가 뱉은 말을 못 지키게 됐네요. 그러나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겁니다." 많은 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정한 노력의 가치를 아는 선수가 떠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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