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가장 엄혹한 때"… 김정은 집사를 러시아 보냈다

조선일보
입력 2019.03.22 03:09

노동신문, 고난의 행군과 비교하며 경제난 이례적 시인
핵무기 보유 강조하며 "물·공기만 있으면 살 수 있다"

김일성 父子 액자 팽개친 천리마민방위 - 최근 ‘자유조선’으로 이름을 바꾼 천리마민방위가 20일 북한 내부에서 벌어진 일이라면서 34초 분량의 영상을 게시했다. 사진은 모자이크 처리된 남성(위쪽)이 벽에 걸린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를 떼어 바닥에 던진 후의 장면.
김일성 父子 액자 팽개친 천리마민방위 - 최근 ‘자유조선’으로 이름을 바꾼 천리마민방위가 20일 북한 내부에서 벌어진 일이라면서 34초 분량의 영상을 게시했다. 사진은 모자이크 처리된 남성(위쪽)이 벽에 걸린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를 떼어 바닥에 던진 후의 장면. /연합뉴스

북한은 21일 고강도 대북 제재가 유지되는 현 상황을 "공화국의 역사에서 가장 엄혹한 시련"으로 규정했다. 전방위 대북 제재 해제의 호기(好機)로 기대했던 하노이 회담의 결렬로 경제난의 장기화가 불가피해지자 이를 주민들에게 '고백'하며 인내를 주문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그러면서도 핵개발 의지를 언급하며 전면적 핵 포기 의사가 없음을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외교가에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임박설이 나오고 있다.

북한 노동신문은 이날 '우리의 전진은 줄기차고 억세다'라는 정론에서 "전후 잿더미도 헤치고 고난의 행군도 해보았지만 현 세기의 10년대(2010년대)에 우리가 겪은 난관은 사실상 공화국의 역사에서 가장 엄혹한 시련"이라고 했다. 현 제재 국면이 6·25전쟁 직후와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때보다 어렵단 것이다. 일반 주민들이 보는 노동신문이 경제난을 시인한 건 이례적이다. 그만큼 제재로 인한 지도부의 고통과 민심(民心) 이반이 심각한 것으로 분석된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북한 지도부가 수십~수백만의 주민이 굶어 죽은 '고난의 행군' 때는 눈 하나 꿈쩍 안했다"며 "이번 경제 위기가 '체제 존립'과 연관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했다.

북한 경제는 유엔 안보리와 미국의 고강도 제재들이 본격 '약효'를 내기 시작한 2017년 하반기부터 급속 악화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북이 작년 초 평창올림픽 참가를 시작으로 전방위 평화 공세에 나선 것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객관적 무역 데이터만 봐도 외화난이 심각한 상태다. 지난해 북한의 대(對)중국 수출액은 전년 대비 87% 급감했다. 올 1월 북·중 무역액 역시 전년 동월보다 8.4% 감소했다. 대북 소식통은 "대북 제재가 완화되지 않는 이상 '자력갱생'으로 소생할 단계는 지났다"고 했다.

북한은 경제의 숨통을 조여 오는 제재를 우회·무력화하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다. '선박 간 환적'을 통한 유류 밀반입, 해킹을 통한 외화벌이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미국이 최근 감시망을 강화하며 이 역시 어려워졌다는 평가다. 키어스천 닐슨 미국 국토안보장관은 지난 18일(현지 시각) 북한의 사이버 범죄를 언급하며 "지켜보고 있다"고 경고했다.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은 "북한 지도부가 '전면 굴복'이라는 선택을 하지 않는 이상 국제 정세는 계속 불리해질 것"이라며 "주민들에게 '앞으로 더 어려워질 것이니 허리띠를 졸라매라'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라고 했다. 실제 노동신문은 "굶어 죽고 얼어 죽을지언정 버릴 수 없는 것이 민족자존"이라며 "물과 공기만 있으면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는 강의한 정신"을 강조했다.

신문은 그러면서도 여러 차례에 걸쳐 '핵무기 보유'를 우회적으로 강조했다. "그 어려운 시기에 제일 크고 강력한 것을 이루어 놓았다"며 "자력의 보검을 당당히 틀어쥔 이 조선(북)"이란 표현을 썼다. 이어 "그것은 진귀한 옥동자, 만복의 도약대와 같다"고 했다. 조영기 국민대 초빙교수는 "'자력의 보검' '최강의 힘' 등은 북의 핵무기를 일컫는 상투적 표현"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의 최측근으로 '의전'을 담당하는 김창선 국무위 부장이 모스크바를 방문 중인 것으로 이날 알려졌다. 김정은의 러시아 방문 임박을 시사하는 정황이다. 남주홍 경기대 교수는 "중국은 무역 협상 중인 미국의 눈치도 살펴야 하고 자국 경제도 좋지 않아 북한을 도울 형편이 안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언급한 '새로운 길'이 러시아와의 밀착을 통한 경제 숨통 틔우기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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