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크레인 옆 전시장… 상상, 규제를 넘다

입력 2019.03.21 03:00

인천의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한 코스모40

좋은 건축은 악조건에서도 피어난다. 못생긴 땅, 부족한 예산 같은 제약을 슬기롭게 극복할 때 좋은 건축이 성립한다. 화학 공장이었던 건물을 새로 단장해 작년 10월 문을 연 인천 가좌동 '코스모40'도 그런 경우다. 규제에 가로막히는 듯했지만 길을 찾아냈다. 그 결과 재생이란 명분으로 리모델링되는 여느 공장들과는 다른 문화 공간으로 거듭났다.

설계는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우승자인 건축가 양수인(44)이 맡았다. 지난 17일 만난 그는 "규제의 모순에서 상상이 시작됐다"며 "법규를 지키는 범위 안에서 재생 건축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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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갈색 공장과 회색 신관이 대조를 이루는 인천 가좌동 '코스모 40'. 3층에서 공장 안으로 뻗어 들어간 신관이 다시 밖으로 나와 계단이 되고, 1층으로 내려와 로비로 연결된다. /사진가 신경섭
현행 법규상 건물을 재생해 쓰려면 기둥 같은 주요 구조물을 내화(耐火) 처리해야 한다. 특수 페인트를 덧바르고 콘크리트로 덮어버리기도 한다. 단열재도 새로 붙여야 해 건물의 예스러운 정취가 사라진다. 이 때문에 재생을 표방한 건축물 중엔 겉모습만 살리거나 일단 허가를 받고 나서 단열재를 떼어내는 곳도 있다. 양수인 건축가는 "건축과 도시계획에서 주목받고 있는 재생이라는 흐름을 법규가 받쳐주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코스모40에서 그가 이 문제를 돌파한 아이디어는 '하나 같은 둘'로 요약할 수 있다. 이 건물은 새로 지은 부분(신관)이 고리처럼 기존 공장에 맞물린 형태다. 신관과 공장은 하나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별개 건물이다. 맞닿은 곳이 하나도 없어 어느 한쪽이 무너져도 다른 쪽이 영향받지 않는다. "신관이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나왔을 뿐이에요. 공장 건물엔 손대지 않고 신관의 배경처럼 남겨뒀기 때문에 지금의 법규를 다시 적용시키지 않고 옛 모습대로 남을 수 있었죠." 신구(新舊)의 대비는 시각적으로도 드러난다. 신관은 회색 철골과 유리를 사용해 현대적인 느낌을 준다. 연갈색 골강판(철판을 잔물결 모양으로 구부린 소재)으로 된 기존 공장과 비슷한 소재이면서도 명확히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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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40의 3층 내부. 신관(왼쪽 유리창 안쪽)엔 카페 등 매장이 있고, 공장에선 사진전이 열린다. /사진가 신경섭
전시·공연 등 다목적으로 활용 가능한 공장 안에는 '안전은 구조가 아니라 실천입니다'라고 적힌 기둥의 스티커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높이 14m에 달하는 3층 천장의 대형 크레인도 여전히 작동한다. 신관엔 로비·엘리베이터와 커피·맥주·피자 등을 파는 매장이 있다. 신관 일부는 1~3층을 잇는 외부 계단을 이루는데, 이 계단을 형상화한 대각선이 건물 관계자들의 명함에 로고처럼 들어갔다. 건물의 얼굴이 된 것이다.

가좌동엔 1970년대부터 코스모화학의 공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2016년 공장이 이전하자 부지 매각을 위해 건물은 하나둘씩 철거됐다. 45개 동(棟) 가운데 마지막 남은 '40동'만이 철거를 피하고 지금의 코스모40이 됐다. '코스모화학 40동'의 기억을 새 건물의 이름에 담았다.

건물의 운명이 바뀐 건 심기보(39)씨의 눈에 띄면서였다. 그가 속한 청송 심씨 집안은 가좌동에서 13대째 터를 잡고 살고 있다. 이곳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심씨는 "문 닫은 공장에 우연히 들어와 봤다가 텅 빈 공간에 기둥들이 우뚝우뚝 버티고 선 분위기에 압도됐다"고 말했다. 이후 심씨는 가좌동에서 카페와 로스팅 공장을 운영하는 커피 업체 '에이블커피그룹'과 함께 부지를 매입해 건물 살리기에 나섰다. 심씨와 에이블커피그룹 성훈식(34) 공동대표는 "이 건물이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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