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괜찮아, 이제 곧 새살이 돋을 거야

조선일보
  • 송혜진 기자
    입력 2019.03.21 03:00

    [생일]
    '세월호'로 아들 잃은 부모 이야기… 분노 없이 모두의 상처 보듬어

    4월 3일 개봉하는 '생일'(감독 이종언)은 누군가는 결국 했어야 할 얘기를 꺼내놓는 영화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로 가족을 잃은 이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렸다. 상업 영화가 쉽게 품기 힘든 이야기를 사려 깊고도 용감하게 전한다.

    세월호 사건으로 아들 수호(윤찬영)를 잃고 정일(설경구)과 순남(전도연)은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아들의 생일이 다가오자 정일과 순남은 복잡한 마음이 된다.

    정일(맨 왼쪽)과 순남(맨 오른쪽)은 아들 수호를 잃고 메마른 일상을 견디며 살아간다.
    이해할 수 없는 그 사건으로 가족은 사진 속의 웃음을 잃었다. 정일(맨 왼쪽)과 순남(맨 오른쪽)은 아들 수호를 잃고 메마른 일상을 견디며 살아간다. 수호의 생일이 다가오자 두 사람은 더욱 크게 갈등한다. /NEW
    붕대로 섣불리 상처를 덮었던 건 그것을 바라보는 게 쉽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들추기엔 너무 아팠고 너무 미안했고 너무 괴로웠던 기억. '생일'은 그런 우리 앞에서 조심스럽게 붕대를 한 꺼풀씩 벗겨 낸다. 상처가 어떻게 아물고 있는지 그래도 봐야만 해서다. 붕대를 푸는 동안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누군가는 외면한다. 우는 이도 있고, 붕대를 풀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는 사람도 있다. '생일'은 이 각각의 반응을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으로 그린다.

    사건이 시대를 관통하면서 빚어낸 갖가지 얘기를 담아내면서도 감독은 저마다의 사연들을 섣불리 판단하지도 비난하지도 않는다. 결국 우리는 모두 아팠을 뿐이라고, 아파서 그랬던 거라고 말할 뿐이다. "보상금은 어떻게 됐느냐"고 묻는 정일의 작은아버지도, 순남과 거리에서 마주치면 몸을 숨기는 수호의 친구도, 목욕탕에 쉽게 들어가지 못하는 수호의 여동생 예솔(김보민)도 모두 상처 입은 우리의 자화상이다.

    붕대를 푼 다음에도 이야기는 신파나 분노로 건너뛰지 않는다. 호수에 차돌멩이를 차곡차곡 채우듯 일상의 에피소드를 이어나간다. 큰 파문을 느끼는 건 관객이다. 식탁 앞에서 밥을 깨작대는 딸 예솔에게 "네 오빠는 밥도 못 먹고 있는데 넌 반찬 투정이나 하느냐"고 불같이 화를 냈다가 이윽고 정신이 들자 아이를 껴안으며 "미안하다"고 하는 순남. 과묵한 아버지 정일이 아들의 생일날 가슴속 비밀을 털어놓을 때, 수호의 생일날 모인 이들이 수호를 잃은 슬픔을 말하는 대신 수호와의 찬란한 기억을 꺼내놓을 때, 무너진다. 어쩌면 이 영화는 상실의 순간보다 함께였던 순간의 행복을 기억하기 위해 완성된 것인지 모른다.

    설경구와 전도연은 대사를 삼키면서 발언하고, 걸음을 멈추면서 관객을 붙들 줄 안다. 영화 마지막 즈음 딸 예솔에게 두 사람이 "손 먼저 씻으라"고 무심히 말하는 장면은 그중 백미(白眉)다. 이들의 대화를 들을 때 우리는 비로소 깨닫는다. 생채기엔 그럼에도 새살이 돋는다는 것을. 우리의 상처도 언젠가는 그렇게 나으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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