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대통령 가족 '사고 총량의 법칙'

조선일보
  • 이동훈 논설위원
    입력 2019.03.20 03:15

    역대 대통령 가족 예외없이 물의… 文대통령 가족 의혹 고개 들어
    꼬리 무는 궁금증에 靑은 침묵, 숨기려고만 들면 폭발력 더 키워

    이동훈 논설위원
    이동훈 논설위원

    마구 법석을 떨며 분별없이 하는 행동을 속어로 '지랄'이라고 하는데 경북대 김두식 교수가 자기 책에서 '지랄 총량의 법칙'이란 걸 소개한 적 있다. 누구나 저마다 타고난 '지랄' 총량이 있어 언젠가는 하고 만다는 것이다. 애 낳고 키워본 사람이라면 공감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법칙이다.

    한국 대통령 가족에게도 그런 법칙이 작동한다. 역대 대통령 가족은 예외 없이, 어떤 식으로든 사고를 쳤다. 말하자면 '대통령 가족 사고 총량의 법칙'이다. YS와 DJ는 임기 후반 아들들 때문에 사과하느라 곤욕을 치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고 치는 형(兄) 때문에 고생했는데 임기가 끝나고선 자식 문제에 발목이 잡혔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형과 아들 문제로 임기 말년은 물론 지금까지도 편치 못하다. 가족 스캔들은 대통령들을 레임덕의 내리막길로 몰거나 이미 접어든 내리막을 더욱 가파르게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 법칙의 예외가 될 걸로 봤다. 남편, 자식이 없는 대통령은 동생들에게도 엄격했다. 박 정권 때 인사들은 "우리 대통령은 이전 대통령처럼 가족 때문에 레임덕 겪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엉뚱한 가족이 등장했다. 옷 지어주고 여성용품을 사다 주던 또 하나의 가족이 권력이 돼 있었다. 배우자·자식 없는 대통령은 가족을 꿔서라도 '총량의 법칙'을 따라가는 모양이다. 당시 청와대는 최순실을 철저히 숨겼다. 여러 의혹이 고개 들었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다. 2016년 10월, 측근 비서관들을 만나 '최순실'을 물었더니 "얼굴만 아는 사람이다. 못 본 지 오래됐다"고 했다. 얼마 뒤 청와대 관저에서 거의 매주 최순실이 그들과 회의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임기 3년 차 문재인 대통령 가족을 둘러싼 여러 의혹이 고개를 들고 있다. 딸 다혜씨는 살던 집을 부부 간 증여 방식으로 매각하고 작년 동남아로 이주했다. 대통령의 외손자는 돈이 많이 드는 국제학교에 입학했다고 한다. 사위가 다녔던 업체를 두고 말이 많았는데, 19일엔 "모 항공사에 특혜 취업했다"는 의혹이 새로 제기됐다. 다혜씨는 한국으로 들어와 현 정권 실세들과 연관된 병원에서 치료받고 다시 출국하기도 했다. 살던 집을 왜 그런 식으로 팔았는지, 왜 동남아로 갔는지, 무슨 돈으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증은 꼬리를 무는데 청와대는 당최 답이 없다. "탈법 없다" "사생활이다"라는 말만 되뇐다. 의혹을 제기한 의원을 향해 "책임을 묻겠다"고 윽박지르기만 했다. 끝까지 숨기면 숨겨진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들 준용씨는 여전히 채용 비리 의혹을 털지 못해 "야당이 대통령 아들만 거론하면 여권 전체가 꼬리를 내린다"는 말을 만들었다. 불쑥불쑥 전해지는 대통령 부인의 언행을 보면서 가족 관리에 대한 개념이 없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주변 관리에 실패한 전 정권을 딛고 선 정권이기에 가족 관리만큼은 깔끔하게 할 줄 알았더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대통령 가족은 권력을 향유하지만 선출되거나 동의받지 않았다. 그래서 까딱하다간 국민의 감정선을 건드리게 되고, 순식간에 "지가 뭔데"라는 비난의 대상이 된다. 불이 붙으면 걷잡을 수 없이 대통령이란 본체에 옮아 붙는다. 전 정부 청와대도 최순실을 숨기기만 하다가 불길을 못 잡았다. 평소부터 밝힐 건 밝히고 알릴 건 알려 김을 빼놓았어야 했다. 숨기려고만 드는 박근혜 청와대를 향해 "아무리 감춰도 진실의 목소리는 터져 나오게 마련"이라고 했던 게 야당 시절 민주당이다. 막상 자기 일이 되니 쉽지 않은 모양이다. 대통령 가족은 어떤 식으로든 사고를 쳤고, 결국엔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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