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산업 '푸드테크'… 실리콘밸리가 돈냄새를 맡았다

조선일보
  • 샌프란시스코·LA=홍지원 탐험대원
  • 취재 동행=손호영 기자
    입력 2019.03.18 03:18

    [청년 미래탐험대 100] [6] 채식산업 이끄는 美캘리포니아
    '이젠 채식주의 시대' 22세 홍지원씨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작은 연구실. 유리 너머로 보이는 플라스크 5개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플라스크 안엔 투명한 액체가 담겼다. 이곳은 요즘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잘나가는 식품 스타트업 저스트(JUST)다. 플라스크 속에서 자라는 건 '닭고기 아닌 닭고기'다. 이렇게 만들어졌다. 부근 농장의 건강한 닭(이름은 '이안')의 깃털 하나를 주워다 거기서 세포를 추출한다. 다양한 식물 성분을 배합한 뒤 산소 농도 등을 잘 맞춰 근육 세포가 빨리 자라게 한다. 그러면 치킨 너깃 식감을 지닌 닭고기가 실험실에서 완성된다. 회사 직원들은 이 실험실 고기를 튀겨서 맛있게 시식하는 동영상을 보여줬다. 식탁 옆에 여전히 살아 있는 닭 이안이 두리번거리며 돌아다녔다. 동물을 도축하지 않고도 고기를 즐길 수 있다는 선명한 메시지였다.

    나는 윤리교육을 전공하는 스물두 살 대학생이다. 7개월 전부터 고기·계란·유제품 등을 먹지 않는 비건(vegan·철저한 채식주의자)으로 살고 있다. 육식이 많은 식단과 육수를 내는 음식문화 때문에 한국에선 끼니마다 고행이다. 하지만 캘리포니아주(州)에서 머문 일주일 동안엔 다른 어려움에 시달렸다. '뭘 골라 먹을까'라는 행복한 고민에 빠진 것이다. 폭넓은 선택권을 가능케 한 핵심은 푸드테크(food-tech), 즉 음식과 기술의 멋진 결합이었다.

    저스트는 인조고기에 앞서 세계 최초로 식물 원료로 만든 계란 '저스트 에그'를 지난해부터 판매해 대성공을 거뒀다. 이곳에서 나는 비건이 된 지 7개월 만에 계란(엄밀히 말하면 가짜 계란)을 입에 넣을 수 있었다.

    ①녹두를 주원료로 하는 식물 원료 인공계란 '저스트 에그'로 만든 스크램블드 에그. ②닭의 세포를 실험실에서 배양해 만든 닭고기 '저스트 미트'. 기름에 튀겨 치킨 너깃처럼 먹을 수 있다. ③미국 LA의 한 레스토랑의 '페퍼로니 피자'. 콩으로 만든 페퍼로니 등 모든 재료가 채식 전용이었다. ④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비건 햄버거 가게 '비건버그'에서 설명을 듣고 있는 탐험대원 홍지원씨.
    ①녹두를 주원료로 하는 식물 원료 인공계란 '저스트 에그'로 만든 스크램블드 에그. ②닭의 세포를 실험실에서 배양해 만든 닭고기 '저스트 미트'. 기름에 튀겨 치킨 너깃처럼 먹을 수 있다. ③미국 LA의 한 레스토랑의 '페퍼로니 피자'. 콩으로 만든 페퍼로니 등 모든 재료가 채식 전용이었다. ④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비건 햄버거 가게 '비건버그'에서 설명을 듣고 있는 탐험대원 홍지원씨. /JUST·손호영 기자
    제품 개발 매니저인 조시 하이먼이 스크램블드 에그, 통통하게 부친 달걀을 베이글 사이에 끼워넣은 샌드위치를 차례로 만들어줬다. 식감·색깔, 게다가 살짝 비릿한 냄새까지 영락없는 달걀이었다. 차이는 하나, 녹두로 만든 인조 계란이라는 점이었다. 하이먼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단백질은 모자라지 않고요, 콜레스테롤은 제로(0)인 새 계란을 우리가 만들어 냈답니다."

    저스트 같은 첨단 기술 회사들은 최근 1~2년 사이 미국인의 식습관을 크게 바꾸는 원동력이 됐다.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가 2019년을 '채식주의자의 해'라고 선언할 정도다. 먹는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고도 비건으로 살 수 있는 세상이 열려 채식이 거대한 새 트렌드로 성장할 가능성이 열리리란 분석이었다. 예컨대 이런 세상 말이다!

    ①지난 2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한 아웃렛엔 비건 식품 판매 부스 20여 곳이 빼곡하게 들어섰다. 인조 닭날개 튀김, 비건 치즈스틱 등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부스마다 줄이 길었다. 비건식을 실천한다는 개럿 래퍼(46)씨는 "세상이 바뀌었다"고 했다. "올해 수퍼볼 광고에 비건 햄버거인 '비욘드버거'의 광고가 등장한 거 봤나요? 수퍼볼 광고가 어떤 의미인 줄 알죠?" 지난해 기준 수퍼볼 광고료는 1초에 2억원이 넘는다.

    ②미국 패스트푸드 체인 칼스주니어는 올해부터 1000곳 넘는 매장에서 식물성 단백질로 만든 바로 그 '비욘드버거'를 팔고 있다. 지난 2일 저녁, 숙소 근처 매장에서 약 6달러를 내고 이걸 주문해 먹었다. 한입을 베어 먹고 영수증을 확인했다. '비건용'이 분명 맞는데 쫄깃한 식감과 기름진 향과 육즙이 진짜 고기와 너무 닮았다.

    늘어나는 미국 채식주의자 그래프

    ③LA 소재 캘리포니아대(UCLA)의 학생 식당 4곳을 방문했다. 적어도 하나씩은 채식 메뉴를 갖춰 두었다. 내가 다니는 한국의 학교 식당은 채식 메뉴를 내지 않는다. 미국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LA에선 극장 등 모든 공공장소의 식당에 비건 메뉴를 하나 이상 구비하라는 법안까지 발의된 상태다. 이 법안을 낸 폴 코레츠 LA 시의원은 "공장식 축산이 유발하는 환경오염을 유튜브 같은 소셜네트워크 등으로 접하고 있는 젊은이들이 채식을 훨씬 더 원한다"고 말했다.

    나는 논문을 준비하다 우연히 알게 된 육식(肉食)의 '민낯'을 보고 식단과 일상을 바꾸기로 했다. 작은 발걸음이지만 몇 개월 전부터 고기와 생선, 유제품을 전혀 먹지 않는 비건으로 살고 있다. 이번에 탐험한 미 캘리포니아는 누구나 마음먹으면 비건으로 살 수 있는 사회였다. 식당·마트·학생식당 어디를 가도 불편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고기나 유제품을 대체하면서 영양까지 갖춘 음식들이 기술의 힘을 발판으로 점점 늘어나는 모습이었다.

    환경 파괴, 건강에 대한 걱정 등 저마다의 이유로 채식을 실천하는 인구는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미국에서만 2014~ 2017년 사이 철저하게 채식만 하는 비건 인구가 6배로 늘었다.이제 채식은 '특이한 문화'가 아니라 돈 되는 산업이 될 것이다. '돈 냄새'에 밝은 실리콘밸리가 앞서 달려 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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