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佛 의사가 들려준 원격진료

입력 2019.03.16 03:05

손진석 파리 특파원
손진석 파리 특파원
올해 마흔넷인 프랑크 보디노씨는 프랑스인 의사다. 30대 초반에 유엔 소속으로 인도·베트남과 아프리카 빈국(貧國)을 돌며 의료 봉사를 했다. 주로 응급 의료 체계를 구축했다. 그리고 2010년 프랑스로 돌아와 H4D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의료 오지(奧地)를 돌아다닌 끝에 원격진료 시스템 개발이 필요하다고 여겨 사업가로 변신한 것이다.

7년을 투자해 보디노씨는 '의료 캐빈'을 개발했고, 유럽에서 선도적 원격진료 장비로 인정받고 있다. 궁금해서 몇 달 전 파리 16구에 있는 H4D 본사를 찾아가 봤다. 보디노씨는 "직접 체험해보라"며 의료 캐빈에 기자를 밀어넣었다. 커다란 흰색 공중전화 부스처럼 생긴 의료 캐빈에 들어가 보니 정면 모니터로 멀리 있는 의사와 실시간 상담을 할 수 있었다. 내부에는 혈당 측정기·안저(眼底) 측정기 등 14가지 의료 기구가 갖춰져 있었다.

H4D의 의료 캐빈은 프랑스·미국·캐나다 등 7국의 기업·대학·관공서 60여 곳에 설치돼 있다. 세계 각지 의사 350명이 계약을 맺고 진료에 참여하고 있다. 작년 한 해 2만명 이상이 진료를 받았다.

보디노씨에게 '프랑스에서 원격진료에 반대하는 의사는 없었는지' 물었다. 그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반대가 거의 없었을 뿐 아니라 참여하고 있는 의사들의 만족도가 꽤 높다"고 했다. H4D의 원격진료에 참여하는 의사들은 각자의 병원에서 일하다가 진료 신청이 들어오면 일정에 맞춰 응할지 말지 결정할 수 있다. 콜택시를 불렀을 때 먼저 응한 운전기사가 손님을 태우러 가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원하는 만큼 부업을 하고 수입이 늘어나니까 의사들이 만족한다고 했다.

프랑스 정부도 화끈하게 규제를 풀고 있다. 작년 9월부터 원격진료에도 병원에 내방해 치료한 것과 똑같이 건강보험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태블릿PC로도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허용했다. 원격의료 시설을 갖추는 개원 의사에게는 정부가 연 525유로(약 67만원)를 지원해주는 제도를 신설했다. 이렇게 해서 정부 차원에서 의사가 부족한 지역의 '의료 사막화'를 줄이고 동시에 의료 산업을 키우고 있다.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영미권보다 규제도 많고 신(新)산업 도입 속도가 느린 나라다. 하지만 원격의료에 대해서는 변화를 선도하고 있고, 의사들도 적극 동참하고 있다. 보디노씨는 "처음에 의료 캐빈을 오지 환자를 위해 개발했지만 글로벌 기업들이 해외 사업장에 속속 들여다 놓으면서 새로운 시장이 열렸다"며 "한국에서도 일단 원격진료를 시행해보고 만약 부작용이 있다면 보완하는 방법이 나을 수 있다"고 했다. 원격의료를 시행하면 날벼락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목청을 키우는 한국의 일부 의사는 보디노씨 이야기를 귀담아들어 볼 필요가 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