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최선희 회견, 협상판 깬다는 것 아니라 美 제재망 흔들려는 것"

입력 2019.03.15 17:02 | 수정 2019.03.15 18:14

北 최선희, 15일 평양에서 외신 상대 회견…美 압박하며 반응 보려는 것
"北 비핵화 의지 없다는 증명"이라는 평가도 나와
내부엔 '협상 결렬' 숨기고, 대미 메시지 보내기 위해 회견 방식 취해
트럼프와 폼페이오·볼턴 갈라치기 하며 정상간 신뢰 강조하기도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3월 1일 새벽(현지시각) 제2차 미북 정상회담 북측 대표단 숙소인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호텔에서 전날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차 정상회담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결렬된 것과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이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보름여 만에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을 중단할 수 있다고 공개 경고하고 나왔다. 그러면서 재작년 9월 6차 핵실험 이후1년 7개월간 유지해온 핵⋅미사일 실험 중단(모라토리엄) 결정을 깰 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다만 북한은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과거처럼 미국을 거칠게 비난하지 않아 협상 재개 가능성을 완전히 닫은 것은 아니란 관측이 나온다.

특히 북한은 이날 최선희 외무성 부상을 내세워 협상 중단 가능성을 밝히면서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직접 비난하지는 않았다. 대신 최선희는 "트럼프 대통령은 좀 더 대화할 용의가 있었지만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더 이상 대화는 없다는 단호한 자세를 보였다"면서 결렬 책임을 폼페이오 장관과 볼턴 보좌관에게 돌리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완전히 비핵화 협상의 판을 깨겠다는 뜻이라기보다 미국이 대북 제재 유지를 고수하고 강화 움직임까지 보이자 판 흔들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당장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발사나 핵실험을 재개하는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는 김정은이 지난 1월 신년사에서 밝힌 ‘제재 압박을 계속하면 새로운 길을 모색하겠다’고 밝힌 것과 연관 지어 미국에 제재를 일부라도 풀어달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했다. 한 전문가는 "최선희는 이날 김정은이 곧 앞으로의 행동 계획을 담은 공식성명을 곧 발표할 것이라고 했는데 미국의 반응을 봐가며 협상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밝힐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월 28일 정상회담을 갖기 전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 美 '최대한의 압박' 유지 고수하자, 北 '판깨기' 협박

미국은 하노이 회담 이후 '일괄타결식 빅딜' 전략을 확고히 하고 있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14일(현지시각) 뉴욕의 주유엔 미국 대표부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해 15개 안보리 이사국을 대상으로 하노이 회담 결과를 설명했다. 이 자리에서 비건 대표는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할 때까지 제재를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소식통은 "비건 대표가 하노이에서의 북미 정상회담 결과를 공유하는 한편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입장을 얘기했다"면서 "현재의 대화 모멘텀을 유지하면서, 북한이 도발하거나 다른 길을 가지 않도록 관여해서 프로세스가 재개되도록 도와달라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하노이 회담 이후 동창리와 산음동 일대에서 미사일 관련 움직임으로 대미 압박 메시지를 보냈지만 미국의 입장 변화가 없어 최선희를 통해 직접적인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성한 전 외교통상부 차관(고려대 국제대학원장)은 "북한은 대화파로 알려진 비건 대표까지 나서서 '빅딜'을 강조하는 상황에 초조함을 느꼈을 것"이라면서 "미국을 한번 협박해보겠단 차원에서 최선희가 나와 '협상 중단' 가능성을 언급했다"고 말했다.

김 전 차관은 "북한은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완전한 비핵화'냐 '완전한 핵무장'이냐는 두 개의 선택지가 남아있는 상황"이라면서 "이런 구도가 계속 굳어져가는 상황에서 중간 지대에서의 스몰딜에 대한 가능성을 살려보겠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강대강 전략을 쓰면서 미국의 반응을 보겠다는 것"이라며 "미국과의 협상전에서 물러날 수 없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고 말했다.

최 부원장은 "김정은이 곧 발표할 성명에서 올해 신년사에서 밝혔던 '새로운 길'로 가겠다고 선언할 가능성도 있다"면서도 "다만 김정은의 메시지는 못을 박는 것이기 때문에 한템포 더 기다릴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최선희의 발언은)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우리 방식대로 가겠다는 의미"라며 "곧바로 미사일을 발사하지는 않겠지만 줄다리기를 하면서 으름장을 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선희의 이날 기자회견으로 북한이 비핵화 의지가 없음이 더 확실해졌다는 분석도 있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최 부상은 미국이 지난달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간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황금 같은 기회를 날렸다고 주장했다"면서 "북한의 제안을 무조건 수용해야 한다는 이 같은 주장은 북한의 비핵화 협상 의지를 의심하게 하는 발언"이라고 했다. 정 본부장은 다만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을 지속할지 곧 결정할 것이라고 했는데, '국무위원회 위원장 성명’을 통해 협상 지속 의지를 밝힐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9년 2월 28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2차 미·북 정상회담 합의 결렬 후 숙소인 베트남 하노이의 JW메리어트 호텔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외신 회견' 방식 취한 최선희…내부엔 알리지 않겠단 의도

최선희가 이날 비핵화 협상 중단 가능성을 발표한 방식도 눈길을 끈다. 최는 이날 평양에서 1시간 가량 평양 주재 외교관 및 외신 기자들을 상대로 회견을 갖고 북한의 입장을 설명했다. 기자들의 질문은 받지 않았다.

이는 싱가포르 1차 미⋅북 정상회담을 앞둔 작년 5월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외무성 부상 담화'를 발표한 것과 대비된다. 당시 최선희는 "미국이 우리의 선의를 모독하고 계속 불법무도하게 나오는 경우 나는 조미(북미) 수뇌회담을 재고려할 데 대한 문제를 최고지도부에 제기할 것"이라면서 "우리는 미국에 대화를 구걸하지 않으며 미국이 우리와 마주앉지 않겠다면 구태여 붙잡지도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라느니 뭐니 하고 횡설수설하며 주제넘게 놀아댔다"며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을 원색적인 표현을 써가며 비난했다.

최선희가 북한 매체가 아닌 외신 회견 형식을 취한 것에 대해선 내부엔 협상 결렬 소식을 알리지 않은 채 대외 메시지만 보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은 현재 하노이 협상 결렬 소식도 내부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면서 "이 시점에 대미 강경 메시지가 내부에 알려지면 '최고지도자가 협상에 실패했다'는 소문이 확산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성장 본부장은 "최선희 메시지의 본질적인 목적은 미국의 반응을 보겠다는 것"이라면서 "내부엔 알리지 않으려 외신 회견 방식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트럼프엔 긍정 평가, 폼페이오와 볼턴은 맹비난하며 갈라치기

최선희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비난하지는 않았다. 대신 폼페이오 장관과 볼턴 보좌관에게 협상 결렬의 책임을 돌렸다.

최선희는 "트럼프 대통령은 좀 더 대화할 용의가 있었지만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더이상 대화는 없다는 단호한 자세를 보였다"며 "김정은이 하노이 회담의 '괴짜' 같은 협상 방식에 곤혹스러워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폼페이오 장관과 볼턴 보좌관이 적대감과 불신을 조성해 조⋅미(북⋅미) 최고 지도자 간 협상을 위한 건설적인 노력을 방해했고, 그 결과 정상회담은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났다"고 했다.

이에 대해 정성장 본부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겐 면죄부를 주면서 폼페이오 장관과 볼턴 보좌관에게 협상 결렬의 책임을 물었다"면서 "정상 간 신뢰를 강조하면서 대화를 계속 하고 싶다는 의사를 은연 중에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선 계속 신뢰를 보여주는 것이다. 최고지도자들 사이에 신뢰가 깨질수 있는 상황이지만 아직은 그러지 않겠다는 의미"라면서 "북한이 대화에 지속적으로 나오겠단 의미"라고 했다.

◇ "촉진자 역할 하겠다는 文 정부, 대북 특사 보낼 시점"

북한의 갑작스런 비핵화 협상 중단 메시지에 청와대는 당혹한 모습이다. 하노이 회담 이후 '중재자'를 넘어 북한 비핵화의 '촉진자'가 되겠다며 미⋅북 협상의 불씨를 살리려던 문재인 정부로선 돌발 변수를 만난 셈이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최선희의 발언은 미국을 압박하려는 의도가 가장 크지만, 그 이면엔 한국 정부의 역할 기대도 담겨 있다"면서 "비핵화 협상 중단은 한국 정부도 원하지 않는 상황이니, 한국 정부가 대미 설득과 남북 경협에 적극 나서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최선희의 회견과 관련해 "최 부상의 발언만으로 현 상황을 판단할 수 없다"면서도 "정부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북미 협상 재개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현 시점에 정부가 미·북 대화의 촉진자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분명한 대북 메시지를 내야 한다고 했다.

최강 부원장은 "미국이 '한국은 북한과 더 가깝다'라고 생각하고 있는 상황에, 문재인 정부가 트럼프 행정부를 설득하기에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면서 "지금은 북한을 설득하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부원장은 "미북 대화가 완전히 교착된 지금이 대북 특사를 보낼 시점이다. 특사를 통해 북한에 '도발을 하지 말고 대화로 해결하라'는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면서 "지난해 2차 남북정상회담 때 처럼 약식 정상회담을 하는 방안도 고려할 만 하다"고 했다.

정부가 남북 경협을 강조하며 북한에 다른 신호를 보내면 안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성한 전 차관은 "하노이 회담 전까지 북한은 적당한 비핵화 진전으로 제재 완화와 남북 경협이라는 핑크빛 미래를 기대했다"면서 "협상이 결렬된 지금, 한국 정부가 남북 경협을 강조하면서 북한이 '한국이 비빌만한 언덕'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어선 안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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