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게판 5분 전… 손맛 보러 오이소"

입력 2019.03.16 03:01

경북 영덕 제철 대게

경북 영덕 제철 대게
지난해 영덕 대게 축제에서 열린 ‘대게 싣고 달리기’ 모습. 참가자가 대게를 담은 수레를 모는 사이 게가 하늘로 솟구쳤다. / 영덕군청
봄바람이 살랑거리는 요즘,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를 즐기고 해산물 요리도 실컷 먹을 수 있는 곳은 어디가 좋을까. 세월이 변해도 경북 영덕에 가면 그 맛이 있다. 부드러운 식감에 달콤한 풍미, 살이 꽉 차고 다리가 쭉쭉 뻗은 대게가 그것이다. 영덕 강구항 입구에 들어서면 멀리서부터 향긋한 대게 찌는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대게 요릿집이 촘촘히 이어진 강구항은 영덕대게 집산지이자, '한국 관광의 별'에 선정된 우리나라 대표 여행지다.

제철 대게, 강구항은 북새통

경북 영덕 제철 대게
영덕 강구항 바로 옆 바다를 매립해 만든 해파랑공원.
3~4월의 경북 동해안은 대게가 제철이다. 산란기가 지나 게살이 꽉 차고 출하량도 많다. 영덕 강구항에는 하루 전 출항했던 대게잡이 배들이 들어오면서 '게판'이 벌어진다. 대게 경매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울리면 항구 주변 대게 식당 상인 수백 명이 일제히 모여든다. 좋은 대게를 사려는 진풍경이다. 경매를 거친 대게는 항구 인근 식당으로 옮겨진다. 강구항에는 대게 전문식당만 170곳이 넘는다.

요즘 강구항 대게 거리엔 전국에서 찾아온 손님들로 북적인다. 대게 전문 음식점마다 찜통에서 쉼 없이 김이 올라온다. 음식점에서 대게 요리를 먹기 부담스럽다면 강구 동광어시장 1층에서 대게를 사고 2층 식당에 올라가면 된다. 상차림 비용만 내면 저렴하게 먹을 수 있다.

대게는 1997년 MBC 주말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 방영을 통해 열풍이 불었다. 영덕 강구항을 중심으로 촬영된 덕분에 대게가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대게는 다리보다는 몸통이 맛있다. 암컷은 더 맛나다지만 포획이 연중 금지돼 있어 먹어볼 수 없다. 식당에서 파는 대게는 모두 수컷이다. 찜을 쪄 대게 속살을 먹고 난 뒤 대게볶음밥은 필수 코스다. 게장이 남은 몸통에 참기름과 당근, 김 등으로 볶은 후 비빈 밥이다. 작은 대게를 여럿 넣고 야채와 함께 끓인 대게 해물탕도 담백하고 시원하다. 다리 살을 고스란히 빼낸 대게회는 비린 맛이 전혀 없고 달착지근하면서 쫄깃하다.

영덕대게의 맛은 고려 태조 왕건도 사로잡았다. 서기 930년 지금의 강구항에서 북쪽으로 10㎞ 떨어진 영덕읍 축산면 차유마을에 들른 왕건이 처음으로 대게를 맛본 뒤 한번에 반했다고 한다. 고려 말 학자 권근(1352∼1409)이 쓴 '양촌집'에 나오는 얘기다. 맛을 인정받은 영덕대게는 조선시대 임금에게 진상품으로 올라갔다. 영덕대게는 2011년 G20 정상회의 만찬 식탁에 오르기도 했다.

보고 먹고 즐기는 영덕대게 축제

경북 영덕 제철 대게
축제 기간 열리는 황금대게 낚시 풍경.
경북 영덕 제철 대게
게딱지볶음밥.
오는 21~24일 영덕 강구항 해파랑공원에서 제22회 영덕대게 축제가 열린다. 올해 축제에선 궁중 대게음식을 테마로 대게음식 문화관과 영덕대게의 유래와 대게인의 삶을 보여주는 전시관이 차려진다. 저렴하게 대게를 살 수 있는 '깜짝 경매', '대게 빨리 실어나르기' 등 다양한 이벤트도 진행된다. 대게 라면과 대게 국수, 대게 빵, 대게 떡을 싼값에 맛볼 수 있다. 지난해 10만 명이 영덕대게 축제를 다녀갔다.

축제장 주변엔 다양한 볼거리도 많다. 해안 64㎞에 펼쳐진 바다 풍광을 따라 걷는 영덕블루로드와 해맞이공원, 대게 원조마을, 항일 의병장 신돌석 장군 생가 괴시리 전통마을 등이다. 바다를 매립해 만든 드넓은 해파랑공원에는 영덕대게와 갈매기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봄바람을 맞으며 산책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인근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천천히 도는 영덕 풍력발전기의 풍경도 이국적이다. 풍력발전기 주변에는 영덕신재생에너지전시관과 영덕해맞이예술관, 영덕조각공원 등 다채로운 즐길 거리도 있다.

최근엔 영덕의 접근성이 더 좋아졌다. 2017년 12월 당진∼영덕 고속도로가 개통된 데 이어 지난해 1월 포항∼영덕을 운행하는 동해선 철도도 뚫려 영덕 여행이 한결 편해졌다. 동해선을 타고 44.1㎞를 달리면 포항에서 영덕까지 34분. 서울에서 KTX와 동해선을 이용하면 3시간 만에 영덕에 닿을 수 있다. 이희진 영덕군수는 "영덕대게는 지역 경제를 살리고 고향의 추억을 이어가는 소중한 자산"이라며 "전국에서 더 많은 분들이 찾아오는 축제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영덕대게 원조는 차유마을

대게 하면 먼저 영덕을 떠올린다. 그런데 영덕에서도 원조 마을은 따로 있다. 축산면 차유마을(경정 1리). 최상의 품질을 인정받고 옛 문헌의 고증까지 받은 차유마을은 강구항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축산항을 지나 차로 20분(20㎞) 거리에 있다.

차유마을이 원조 영덕대게 마을로 손꼽히는 이유는 영덕군 해역 중에서도 강구항과 축산항 사이의 해역 3마일에서 잡힌 대게가 품질이 뛰어난데 그중 차유마을 앞 수심 200m 이내 바다에서 잡힌 대게가 최고급으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고증으론 고려 29대 충목왕 2년(1345)에 초대 영해부사 정방필이 부임해 영덕대게 산지인 이 마을을 찾기 위해 재를 넘는 수고를 해야 했다. 당시 영해부사가 수레를 타고 고개를 넘어왔다고 해서 마을 이름을 '차유'(수레가 머물렀다)라고 붙였다. 특히 이 마을에서 잡은 게의 다리가 인근 죽도산의 대나무와 같다고 해서 처음으로 대게(죽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마을로 들어서면 원조 영덕대게 마을임을 알리는 표석이 있다. 대게 전문식당이 없어 강구항처럼 쭉 늘어선 찜통 풍경은 없지만 예약에 따라 가정집에서 선주가 직접 잡는 영덕대게를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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