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법정에 나오니 판사가 없다

입력 2019.03.15 03:13

박국희 사회부 기자
박국희 사회부 기자
지난 12일 서울고등법원의 한 법정 앞. 당일 재판 일정을 알리는 안내 화면에 재판 날짜가 바뀌었다는 '기일 변경' 표시가 가득했다. 이날 A재판장은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그는 한 주 전 검찰의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로 기소됐다. 이후 대법원은 그를 한직(閑職)인 '사법연구'로 인사 발령을 낸 상태였다. 사실상의 직무 배제다.

이렇게 검찰 기소로 재판 업무에서 배제된 차관급 부장판사가 서울고등법원에만 세 명이다. 보통 고등법원 한 재판부가 취급하는 재판이 150여건에 달한다고 한다. 갑자기 세 명의 재판장이 재판에서 손을 떼게 되면서 법원은 그들이 심리해오던 사건들을 다른 판사들이 나눠 맡도록 업무를 조정했다지만 재판 지연은 불가피할 것이다.

법정 앞에서 만난 한 사건 관계자는 이날 법원에 와서야 재판부 교체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사전에 통지를 받은 것은 없었다. 그는 "판사들이 수사를 받는다는 사실은 들었지만 내 사건 재판장이 기소된 줄은 몰랐다"면서 "재판부가 바뀌면 재판도 지연될 텐데 그게 걱정"이라고 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지난 2월 법원 인사로 재판부가 이미 한 차례 대거 바뀐 상황에서 이번 재판 배제 사태로 재판부가 세 번째 바뀐 당사자들도 상당수"라며 "판사들이 새로 사건을 파악하고 검토하려면 그만큼 또 시간이 걸릴 텐데 그 피해는 결국 국민이 떠안는 셈"이라고 했다.

법원은 재판부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재판 당사자들에게 통보해 줄 의무가 없다는 입장이다. 매년 법원 정기 인사 때마다 전국의 재판부가 바뀌지만 이를 일일이 재판 당사자들에게 알려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보통 다음 기일에 법정에 나와 새 판사를 보며 재판부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법원 사정일 뿐 소송 당사자들은 답답할 뿐이다. 어디다 하소연할 곳도 없다. A재판장 재판부에서 가처분 소송을 진행 중이었다는 한 기업 관계자도 "빨리 결론이 나오면 좋겠지만 검찰 기소로 재판부가 바뀌고 재판이 지연된다고 해도 어쩌겠나. 그게 법원 사정이라면 그냥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재판을 받고 있는 입장에서 법원이나 판사들에게 항의할 수 있는 당사자들이 과연 얼마나 되겠나.

대법원은 지난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된 6명의 법관들에 대해 재판 배제 조치를 내렸다. 검찰은 66명의 법관에 대해서도 대법원에 추가 자료를 넘겼다. 이 중 얼마나 더 재판 배제 조치를 받는 판사들이 나올지 모른다. 사실 그런 법원 사정에 일반 국민은 큰 관심이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재판이 제대로 이뤄지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의 재판이 하염없이 늘어져도 법원에선 누구 하나 사과하는 사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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