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관방장관까지 경제보복 거론… 한국 "맞대응 준비"

입력 2019.03.14 03:11

日관방 "모든 선택지 고려할 것"… 강제징용 배상 놓고 갈등 격화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의 후속 조치를 놓고 한·일 간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최근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일본 기업 자산 압류와 관련해 일본 정부가 연 이틀 '보복 조치'를 거론했고, 우리 정부는 '보복 조치시 맞대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14일 열리는 한·일 국장급 협의 등에서 타협점을 못 찾을 경우 보복·맞불 조치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본 정부 대변인 격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13일 아소 다로(麻生太郞) 경제부총리 겸 재무상이 전날 언급한 보복 조치와 관련, "모든 선택지를 고려해 적절히 대응해 나가겠다"고 했다. 아소 다로 부총리가 전날 "관세뿐 아니라 송금이나 비자 발급 정지 등 여러 보복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했던 발언을 부인하지 않은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 고위 관계자는 "불상사에 대비한 우리 쪽 맞대응 카드 등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소 다로(왼쪽)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이 지난 12일 중의원 재무금융위원회에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 “관세와 송금, 비자 발급 정지 등 여러 보복 조치를 고려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정부 대변인 스가 요시히데(오른쪽) 관방장관도 13일 “모든 선택지를 고려하겠다”고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다. 스가 사진은 지난 2017년 부산 일본영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 설치에 항의하는 모습이다.
아소 다로(왼쪽)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이 지난 12일 중의원 재무금융위원회에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 “관세와 송금, 비자 발급 정지 등 여러 보복 조치를 고려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정부 대변인 스가 요시히데(오른쪽) 관방장관도 13일 “모든 선택지를 고려하겠다”고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다. 스가 사진은 지난 2017년 부산 일본영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 설치에 항의하는 모습이다. /마이니치신문·AFP 연합뉴스

일본의 보복 조치로는 관세 인상 외에 일본 제품 공급 중단, 한국인 비자 발급 제한,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물질인 불화수소 수출 중단 등이 거론된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 일본 측 보복 조치에 대비해 우리 정부는 '시나리오별 대응 방안'을 세우고 있다. 도쿄의 외교 소식통은 "한·일 정부가 사실상 외교를 방기(放棄)하면서 양국이 서로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치킨 게임 형국이 됐다"고 했다.

당초 일본 자민당 일각에서만 거론되던 '보복 조치'는 한·일 양국 간 협의가 진전을 보이지 못하자 점차 다양화·구체화됐다. 지난 11일엔 미쓰비시중공업 징용 피해자 측이 한국 내 자산뿐 아니라 유럽 내 자산 압류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며 일본 정부의 대응 기류가 더 강경해졌다. 일본 정부가 고려 중인 보복 조치가 100개 전후에 달한다는 일본 언론 보도도 나왔다. 이 가운데는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물질인 불화수소 수출 중단 방안도 거론됐다. 불화수소는 국내 반도체 제조사들이 대부분 일본산을 수입하고 있다. 수출 중단이 현실화한다면 우리 기업에 큰 타격이 된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이날 일본 정부의 '보복 조치' 거론에 대해 "일본이 우리 정부에 통보해 온 바는 없다"며 "우리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반의 준비'와 관련, "(구체적인 내용을) 미리 밝힐 필요는 없다"고 했다. 실제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의 보복 조치 시 일본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맞대응 카드'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가에선 일본의 보복 조치가 당장 현실화할 가능성은 작다고 본다. 일본 내에서 보복 조치의 여파가 일본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큰 데다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위반 여부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불화수소 수출 중단의 경우, 한국산 반도체 상당량이 일본으로 수출되고 있기 때문에 일본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한국인의 취업 비자 발급을 제한하거나 한국인 관광객 무비자 정책을 폐지하는 방안도 한국 정부의 맞대응을 감안할 때 실현되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많다.

다만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만약 5~6월쯤 실제 일본 기업 압류 자산의 매각까지 이뤄질 경우, 아베 내각은 자국 여론을 의식해 일정 피해를 감수하고 보복 조치에 나설 것"이라며 "'한국은 투자할 수 없는 나라'라는 논리로 국제 여론전을 통한 압박 수위도 높일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우방국 간에 이처럼 과거사 문제로 상대방에 대한 보복 조치를 공개적으로 언급하며 정면 충돌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한·일은 14일 외교부 국장급 협의를 통해 강제징용 배상 판결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우리 정부는 일본 측 보복 조치 거론에 우려를 표하며 신중한 대응을 촉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양국 정부 지도자들이 책임 있게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대안 없는 대화'로 풀기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갈등 국면이 장기화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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