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버닝썬과 아이돌

조선일보
  • 한현우 논설위원
    입력 2019.03.14 03:16

    얼마 전 강남에서 인기 높다는 클럽에 가본 적이 있다. 무슨 이유인지 손님으로는 입장 불가였고 다른 핑계를 대야 했다. 'VIP룸'도 들여다봤는데, 한 층 아래 춤추는 홀이 훤히 보이면서 밖에서는 내부를 볼 수 없었다. 건물 밖으로 통하는 별도 출입구가 있고 바로 앞까지 차를 댈 수 있어 일반 손님과 마주칠 일도 없었다. 부유층들이 사적(私的) 파티를 하러 온다고 했다. 버닝썬이나 아레나 같은 클럽의 VIP룸이 비슷할 것이다.

    ▶이런 클럽도 내부 구조나 술 마시고 춤추며 노는 건 일반 나이트클럽과 별다를 바 없다. 그러나 인테리어와 술·안주의 급이 다르고, 무엇보다 '손님의 외모'를 속되게 부르는 '물'이 다르다고 한다. 다른 곳에선 '웨이터'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이곳에선 'MD'라고 한다. 상품기획자를 뜻하는 '머천다이저'의 줄임말인데, 외모(물)가 좋은 손님(게스트), 즉 '물게'를 섭외하는 역할이다. 그런 섭외는 '픽업'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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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닝썬 사건으로 클럽 VIP룸에서 벌어진 온갖 추잡한 광경이 드러났다. '픽업' 되려는 여자 손님을 말리다가 보안요원에게 맞았다는 한 남자가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 이후 경찰 뇌물 수수와 마약·탈세·성접대까지 여러 의혹이 꼬리를 물었다. 연루된 아이돌 스타 둘이 연예계에서 퇴출됐다. 한 사람은 대표적 한류 스타이고, 다른 사람은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으로 '가수 겸 방송인'이라고 했다.

    ▶앞사람은 필리핀 리조트를 통째로 빌려 생일 파티에 수억원을 썼다는데, 룸살롱 종업원 수십명을 데려가 클럽 분위기를 냈다고 한다. 뒷사람은 평소 예의 바르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알고 보니 카톡방에서 성관계 동영상을 돌려보고 키득거렸다. 방송에 나와 '카톡 전용'이라며 그 휴대폰을 자랑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아이돌 스타는 대단한 문화 전도사처럼 포장돼 있지만 사실 '기획상품'일 뿐이다. 방송사가 이들을 온갖 프로에 돌리며 허상을 만들고, 그 허상을 이용해 또 프로를 만든다. 사회학자인 존 리 UC버클리대 교수는 아이돌이 이끄는 K팝을 "문화나 미학을 따질 것 없는 적나라한 상업주의"라고 했다. 돈과 인기를 주체 못한 어린 우상(偶像)들이 밀실에서 패악을 부리다 들킨 것이 이번 사건의 전말이다. 사실 충격받거나 실망할 일도 아니다.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던 일들이 사실로 드러났을 뿐이다. 진짜 대중예술은 지금 이 순간에도 TV가 아니라 고독한 연습실에서 땀 흘려 빚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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