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란국죽 '사군자 한시' 우리말로 옮겨 출간한 김대현 교수

입력 2019.03.13 16:14 | 수정 2019.03.13 16:18

‘사군자 한시집’ 국역출간
김대현 전남대국문과교수

긴 대나무 작은 집 동쪽으로
외롭고도 쓸쓸하게 수십 그루 서 있네
푸른 뿌리는 용처럼 땅으로 뻗어있고
차가운 잎은 옥이 바람에 우는 듯
빼어난 빛은 온갖 풀보다 고상하여
맑은 그늘 허공을 반쯤 덮어 가린다네
운치 있고 기묘하여 형용할 수 없어라
밤 서리 내리고 달 밝은 가운데서는

‘비 개인 긴 언덕 풀빛 푸른데’로 시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며(送人)’ 시로 이름난 고려시대 문인 정지상(1068~1135)의 ‘대나무를 읊다’(詠竹)라는 한시다.

김대현 전남대 국문과교수(대학원 한문고전번역학과교수)가 선인들의 사군자를 주제로 한 한시를 우리말로 옮겨 ‘사군자 한시선’(전남대학교출판문화원)를 출간했다. 김 교수가 지난 2017년 펴낸 ‘무등산 한시선’에 이은 두번째 주제별 한시선 국역집이다.

김대현 전남대교수가 펴낸 ‘사군자 한시선’.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선인들이 남긴 사군자 한시 116편을 국역하여 실었다. /권경안 기자
대나무는 곧게 하늘을 향해 뻗는다. 겨울에도 푸른 잎을 간직하듯 옛부터 절개를 상징한다. 그래서 동양에서는 대나무를 비롯 매화, 난초, 국화를 사군자라 불렀다. 덕과 학식을 갖춘 사람의 인품에 비유하여 이들을 군자라 했다.

맑고 깨끗한 매화는
복사꽃 배꽃 뒤따라 피기 싫어한다지
외로운 신하 충성스러워 귀양을 가듯
어질고 아름다운 여자 부르기 어려운 듯
스스로 향기로운 덕 지녔는데
어찌 눈보라에 꺾이는 것 시름하리
이를 누구와 더불어 같이할거나
걸으며 돌며 날마다 배회한다네


김대현 교수가 펴낸 ‘사군자 한시선’.
고려말기 대표적 문인 정몽주(1337~1392)가 읊은 매화 한시를 역시 옮겼다. 매화는 이른 봄의 추위를 무릅쓰고 꽃을 피운다. 선인들은 이런 매화의 덕목을 배우고자 했다. 옛 사람들이 추구했던 이상적 인간형의 덕목이었다.

가을바람 어찌하여 우수수 부는가
흰 이슬 엉키어 서리가 되었네
저 아름다운 난초를 보니
가시덤불 곁에 몸을 던졌구나
그윽한 꽃은 맑고 향기로우며
푸른 잎은 빼어나고 기다랗구나
저녁 내내 홀로 서성이면서
바람 맞으니 긴 슬픔이 더하네

이 시는 조선전기 문인 김시습(1435~1493)의 ‘길가의 난을 보고’이다. 단종에 대한 신의를 지키려 은거한 생육신이다. 난초는 은은한 향기를 발한다. 이 역시 고귀함과 절개의 상징이다.

향기 나는 뿌리 가랑비에 옮겨 심는데
스스로 하다 보니 지팡이 짚은 손이 더디네
어찌 고운 금빛이 아름다워서이랴
다만 은자의 자태를 보고자 함이지
이슬 받은 잎사귀 펴지기도 전에
서리이긴 새 가지 펼쳐 틔웠구나
모든 화초 시들어 떨어진 뒤
세모의 때가 되면 잘 어울리겠지

강릉 오죽헌에는 율곡매가 있다. 어머니 신사임당과 아들 율곡이 가꾸었다고 전해진다. 조선중기 성리학자 이이(1536~1584)는 사군자에 관한 많은 시를 남겼다. 그중 ‘국화를 심으며’이다.

난 그림을 그리지 않은 지 이십년
우연히 하늘의 본성을 그려냈구나
문을 닫고 깊이깊이 찾아드니
이 경지가 바로 유마의 불이선일세
어떤 사람이 그 이유 말하라 한다면
마땅히 유마처럼 사절하겠네

조선후기 실학자이자 서화가인 김정희(1786~1856) 작품이다. 그가 그린 ‘난과 선은 둘이 아니다’라는 그림에 붙인 한시이다. 선(禪)의 경지를 난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한학자 임창순(1914~1999)선생이 세운 지곡서당(태동고전연구소)에서 한문을 배운 김대현 교수가 이번에 옮긴 한시는 모두 116작품이다.

정지상 김부식 정서 이인로 이규보 일연 최향 충지 이곡 정보 혜근 이색 정추 정몽주 정도전 조준 권근 변계량 김극기 유방선 김수온 신숙주 강희안 성삼문 서거정 김종직 김시습 성종 박상 이행 조광조 양팽손 서경덕 이언적 주세붕 이황 조식 엄흔 김인후 양응정 기대승 고경명 송익필 이이 정철 백광훈 김성일 이성중 이산해 이달 홍가신 정구 조호익 유근 신흠 허균 김육 이식 윤선도 장유 강백년 홍우원 송시열 고징후 윤두서 강세황 홍양호 위백규 이덕무 정조 정약용 신위 심의당김씨 김정희 조희룡 김흥락 최익현 정석진 황현 서병오 오세창 한용운 허백련의 시작품들이다.

김 교수는 "사군자는 오랜 세월 애호되어 오는 동안 유교의 군자로서의 상징성 뿐 아니라 민속적인 상징이나 불교, 도교의 상징성이 더해졌다"며 "사군자 한시에는 옛 문인들이 추구하고자 했던 다양한 삶의 모습이 다채롭게 표현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사군자는 중국이나 한국을 비롯하여 일본이나 동남아시아에까지 걸쳐있던 상징적인 언어이자 아시아문화의 핵심원형"이라며 "무엇보다 각 식물특성이 덕과 학식을 갖춘 사군자가 지녀야 할 훌륭한 덕목과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군자다운 삶을 사는 것, 예나 지금이나 그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만, 사군자 한시를 읽으면서 조금이라도 다시 그 뜻을 본받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역주 무등산유산기’ ‘호남문집 기초목록’ ‘역주 고산유고’ ‘무등산 한시선’ ‘누정총서’ 등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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