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7월 제13대 국회서 발의된 '형법 104조의2 폐지' 개정안 찬성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12일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을 '김정은 수석 대변인'에 빗댄 것에 대해 "국가원수 모독죄"라고 했다. 이 대표가 거론한 ‘국가원수모독죄’는 1988년 폐지된 형법의 ‘국가모독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대표는 31년 전 초선의원 시절 국가모독죄 조항 폐지에 찬성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원수모독죄'는 현재는 물론 과거에도 없던 죄명이다. 이와 비슷한 취지의 '국가모독죄'는 유신 시절인 1975년 형법(제104조의2)에 도입됐다가, 1988년 12월 폐지됐다. 형법 104조의 2는 "내국인이 국외에서 대한민국 또는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모욕 또는 비방하거나 그에 관한 사실을 왜곡 또는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기타 방법으로 대한민국의 안전·이익 또는 위신을 해하거나, 해할 우려가 있게 한 때에는 7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형법 제104조의2 조항은 폐지된 이후 27년이 지난 다음에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이 내려졌다. 유신 정권에서 이 조항으로 처벌을 받은 양성우 시인은 2012년 재심을 청구했고, 이듬해에는 자신을 처벌한 법률적 근거인 국가모독죄 조항에 대해 헌법에 어긋난다며 헌재에 판단을 구했다. 헌재는 이에 대해 "형사처벌로 표현행위를 일률 규제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국가모독죄가 폐지된 것은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이후 1988년 4월 총선으로 들어선 13대 국회에서 '민주발전을 위한 법률개폐 특별위원회'가 구성된 게 계기가 됐다. 1988년 12월 15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특위 소속 홍세기(작고) 당시 민정당 의원은 "1975년 3월 25일 개정 신설된 형법 중 국가모독죄 조항은 국가발전을 위한 건전한 비판의 자유를 억제하거나 자의적으로 해석 운영돼 반(反)정부인사를 탄압하는 기능을 할 우려가 있으므로 국민의 건전한 비판을 통한 민주사회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형법 제104조의2 국가모독 등 죄 조항을 삭제 개정하려는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당시 국회엔 특위위원장이었던 오유방 민정당 의원 등 97명이 발의한 형법 개정안과 박상천(작고) 당시 평민당 의원 등 167명이 발의한 형법 개정안 두 건이 발의돼 있었다. 형법 104조의2를 삭제한다는 동일한 내용의 법안이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박상천 의원이 발의한 형법 개정안 제안자 목록에 당시 평민당 소속으로 초선 의원이었던 이해찬 대표가 '찬성'한 의원으로 올라 있다. 지금으로 치면 공동 발의자에 해당한다. 결국 두 법안을 절충한 위원회 대안이 본회의에 올라갔고 국가모독죄 조항은 만장일치로 폐지됐다.
한국당 관계자는 "31년 전 국가모독죄 폐지하는 데 찬성한 이 대표가 지금은 야당 원내대표에게 ‘국가원수 모독죄’를 거론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