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에 뜬 하늘의 농부, 생산량 10% 늘렸다

조선일보
  • 로잔(스위스)=김은진 탐험대원
  • 취재 동행 조선비즈 김남희 기자
    입력 2019.03.11 03:00

    [청년 미래탐험대 100] [4] 드론이 키우는 스위스 농업… 농업 혁신 꿈꾸는 25세 김은진씨

    정밀기계 강국 스위스의 도시 로잔에서 거대 박쥐 같은 무게 1.4㎏짜리 드론을 두 손에 들었다. 검은색의 이 드론은 비행기 축소판처럼 양 날개와 프로펠러를 갖고 있었다. 양 날개 사이 비행기 객실에 해당하는 본체엔 최첨단 카메라·센서·배터리가 들어 있었다. 드론 스타트업인 '센스플라이'의 벤저민 핑게 매니저는 "이 드론이 하는 일은 농사를 더 효율적이고 쉽게 하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1차 산업이라 불리는 농업과 '혁명적'이라고 불리는 4차 산업의 주인공 드론은 알프스의 예쁜 호수 도시 로잔에서 신나게 뒤섞여 있었다.

    드론이 농사를 돕는다니, 감이 잘 오지 않았다. 내 표정에서 '물음표'가 읽혔는지 "가서 보면 안다"며 따라오라고 했다. 이 드론 녀석의 이름은 이비(eBee), 귀엽게도 '전자 꿀벌'이란 뜻이다. 모양이 투박해서 외모야 꿀벌과 거리가 있었지만, 인간의 식량 생산을 돕는다는 면에선 꿀벌과 하는 일이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스위스 로잔의 드론 제조 업체 센스플라이를 방문한 탐험대원 김은진(25)씨가 농업용 드론 이비(eBee)를 들고 있는 모습.
    스위스 로잔의 드론 제조 업체 센스플라이를 방문한 탐험대원 김은진(25)씨가 농업용 드론 이비(eBee)를 들고 있는 모습. /김남희 조선비즈 기자
    이 전자 꿀벌이 일하는 방식은 이렇다. 먼저 측정하고자 하는 농지와 작물을 정한다. 드론은 날아다니는 동안 몸에 부착된 센서와 카메라로 농작물을 촬영한다. 이 전자 꿀벌은 한 번에 최장 59분을 날 수 있는데, 그동안 122m 높이에서 여의도와 비슷한 면적인 2.2㎢ 농지를 카메라에 담는다. 비행이 끝나면 소프트웨어에 기록된 영상과 자료를 이용해 작물의 영양 상태와 성장 정도를 세밀하게 파악할 수 있다.

    "자, 한번 직접 날려 볼래요?" 처음 날려보는 드론이다. 아, 긴장된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날린 드론은 힘이 약해서인지 땅에 금세 떨어졌다. 하지만 이 회사 드론 트레이너인 안드레아 블라이덴바허 매니저가 나 대신 성공적으로 드론을 날리는 것을 보고 대리만족할 수 있었다.

    본격적인 분석 작업은 사무실로 돌아와 시작됐다. 9분 정도 드론이 비행하며 모은 정보는 수십 개의 파일에 나뉘어 저장됐다. 파일들을 한꺼번에 불러오니 드론이 찍은 농지 사진 위로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이 나타났다. 드론에 달린 '세쿼이아플러스' 센서와 카메라는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뿐 아니라 빛의 파장, 인간이 감지 못하는 색까지 담아낸다고 한다. 블라이덴바허 매니저는 초록색과 붉은색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빛이 다른 파장에서 어떻게 반사되는지에 따라 작물의 색이 다르게 표현되는데, 초록색은 작물이 건강하다는 뜻이고 붉은색은 작물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으며 영양분이 부족한 상태란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작업을 사람이 직접 한다면 다 살피기도 전에 농사철이 끝날 터이다.

    스위스의 농업용 드론 제조 업체 '센스플라이'의 이비가 한 농장 위를 날아가고 있다.
    프랑스의 농업협동조합은 2015년부터 센스플라이 드론을 이용해 비료 필요량을 정확히 파악해 작물 생산량을 평균 10% 늘렸다고 한다. 장 토마스 셀레트 센스플라이 이사는 "드론을 이용해 얻은 데이터로 농가는 수확량을 늘리고, 비료와 농약 사용을 줄여 비용을 아끼고 환경에 가하는 충격도 낮출 수 있다. 앞으로 기업형 농장과 협동조합뿐 아니라 규모가 작은 개별 농가도 드론 도입을 늘릴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말인즉슨 이제는 땅에서 농작물을 파악하지 않고 하늘에서 드론으로 더욱 효율적인 농사 정보 파악이 가능한 세상이 왔다는 것 아닌가.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내 머리엔 어린 시절 고향 논밭의 풍경이 떠올랐다. 부모님이 맞벌이여서 빈집에 들어가기 싫었던 나는 울산의 한 마을회관 앞 푸른 논과 밭에서 열심히 농사짓는 많은 사람을 몇 시간이고 바라보곤 했는데, 허리를 숙이고 농사짓는 모습은 건강하면서도 힘겨워 보였다. 농사가 '고생'이 아닌 '혁신'이 되다니 온몸에 소름이 돋을 만큼 놀랍게 느껴졌다.

    로잔에 있는 또 다른 스위스 회사 '가마야'는 드론과 위성이 찍은 이미지를 인공지능 기술로 분석해 농작물의 영양소 공급 정도와 질병 감염 여부를 파악하고, 농가에 최적의 작물 관리법을 알려준다. 농업 대국 브라질의 대형 사탕수수 농장이 현재 이 회사의 이미지 분석 기술을 쓰고 있다고 한다. 스위스를 '기름진 토양'으로 연결짓는 이는 별로 없다. 심기만 하면 열매가 주렁주렁 열린다는 프랑스와는 달리 척박하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치즈 왕국'이라고만 알고 있던 스위스에서 첨단 기술의 힘으로 농업 강국으로 진화하는 모습을 보았다.

    귀국길에 비행기 창밖으로 눈으로 뒤덮인 산봉우리들을 바라보며 '왜 우리는 땅에서만 농사를 생각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첨단 기술이 발달해도 인간은 먹거리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 앞으로 2050년 세계 인구는 100억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식량 위기가 올지도 모른다고 한다. 농업 혁신 기술을 이용해 노동력을 줄이고 생산량을 증가시킨다면 지속 가능한 미래 농업에 한발 다가서지 않을까. 그 미래로 가는 길을 스위스에서 보았다.


    [미탐100 다녀왔습니다]

    "나만큼 농업에 미친 또래 로잔공대생들… 투지가 불끈"


    저는 어려서부터 농사의 매력에 푹 빠져 대학도 식물자원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한마디로 농업에 미쳐 있는 대학생입니다. 진로를 농업으로 정했을 때 많은 사람이 만류했지만 조금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농업은 사물인터넷 등 정보통신기술과 결합하면 엄청난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의 땅이라고 믿었으니까요.

    스위스가 그 일을 먼저 해내고 있었습니다. 드론을 논밭 상공으로 날리면 농작물의 영양 상태, 질병 가능성이 구체적인 숫자로 나왔고, 그 덕에 농약이나 비료 사용량을 줄일 수 있어 경제성과 친환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게 가능했습니다. 대부분이 산악 지형으로 둘러싸인 스위스 땅에서도 농업 생산량은 꾸준히 늘고 있는 비결이었습니다. 스위스에서는 젊고 혁신적인 젊은이들이 농업의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스위스 최고 공대인 로잔공대에서 만난 동갑내기 연구원들은 나무에 매달린 사과 하나하나까지도 정밀하게 모니터링할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하더군요.

    이번 탐험을 통해 농업 선진국과의 격차를 절감했습니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는 건 우리의 성장 잠재력이 크다는 걸 의미합니다. 저도 그 여정에 힘을 보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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