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듯 살아 움직이는 빛, 경이롭다"

입력 2019.03.11 03:00

20만 관객 돌파… 제주 화가 이왈종이 본 '빛의 벙커'展

제주에 유채(油菜)가 만개했다. 노 화가의 온몸은 빛이 흩뿌린 유채(油彩)로 흠뻑 젖었다. "제주에 정착한 지 30년째 되는데, 이런 미술 체험은 처음이다. 경이롭다. 그림이 정체돼 있지 않고 살아 움직이지 않나." 제주 대표 화가 이왈종(74)씨가 말했다.

제주 서귀포 성산읍에서 열리고 있는 미디어아트 전시 '빛의 벙커: 클림트'가 10일 관람객 20만명을 돌파했다. 꽃이 번지듯 개막 4개월도 안 돼 소문과 발길이 불 붙고 있다. 관람객 중에 이씨도 있었다. 개막전 이후 두 차례 전시장을 찾았다. "클림트는 색채와 사랑의 마술사다. 오스트리아·스위스 여행 가서도 클림트 전시를 찾아갈 정도로 좋아한다. '빛의 벙커'에 와보니 원화와 전혀 다른 전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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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빛의 벙커' 전시장에 선 이왈종. "마음의 평화를 위해 매일 저녁 요가 학원에 나간지 3년 됐다. 몸을 굳게도 하고 풀어주기도 하는 게 호흡이다. '빛의 벙커'에서 그림이 숨을 쉬고 있다." /남강호 기자
TV 대신 유튜브로 뉴스를 본다는 이씨는 평소 미디어 작품에도 관심이 많다. 6년 전 제주 왈종미술관 개관 당시 그의 대표 연작 '제주 생활의 중도(中道)' 70여 점을 바탕으로 한 미디어 작품을 공개하기도 했다.

1990년 제주에 내려왔다. "대학 교수로 있었는데 그림도 잘 안 되고, 그냥 쉬고 싶었다. 꽃과 자연하고만 살자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제주 생활의 중도'가 시작된 것이다. 집보다 큰 꽃과 나무, 풀밭이 화면을 채운다. 그 주변에서 새와 짐승과 사람들이 노닌다. "행복하려면 누굴 미워하면 안 된다. 그래서 꽃을 그린다."

전시장에 클림트의 1912년 작 '사과나무'가 점점이 흘러나올 때, 이씨의 몸이 그 봄의 풍요를 향해 기운다. "꽃 싫어하는 사람 있나. 행복과 곧장 연결돼 있는 게 꽃 같다. 요즘도 돋보기 들고 해변을 걷는다. 육안으론 안 보이는데 돋보기로 보면 돌 위에 꽃이 피어 있다. '빛의 벙커'에서도 삼면에 꽃잎이 막 떠오를 때 너무 좋았다."

지난해 그는 죽음에 매우 가까이 다가간 적이 있다. "넘어져 이마가 찢어지고, 교통사고만 두 번 겪었다. 12월엔 골프장에서 타고 있던 카트가 3m 비탈로 굴러떨어져 허리를 크게 다쳤다. 3개월 정도 누워 지냈다. 평생 이런 우환이 없었다. 10여년 전 철학관에서 사주를 봤는데 '한국 나이 일흔 넷에 죽을 고비가 온다'고 하던 얘기가 퍼뜩 떠오르더라."

그 우환의 나이를 지나자, 다시 제주에 꽃이 피었다. 지금 이씨는 150호짜리 대형 매화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나이 드니 밝은 게 더 좋아진다. 빛은 에너지다. 빨강을 보면 힘이 솟는다. 하지만 하늘에 구름이 끼면 괜히 몸도 안 좋다. 그러니 빛이 얼마나 중요한가." 10월 2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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