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金씨 가문, 3대째 애연가… 런던 금연식당서 피우겠다고해 내가 망봐주기도

조선일보
  • 태영호 전 북한 외교관
    입력 2019.03.09 03:00

    [평양남자 태영호의 서울 탐구생활]

    평양남자 태영호의 서울 탐구생활 일러스트
    일러스트= 안병현
    지난 미·북 정상회담 때 김정은이 하노이로 가던 도중 중국 난닝역에서 성냥으로 담뱃불을 붙이는 장면이 화제가 됐다. 언론에서 라이터 대신 불편한 성냥을 사용하는 이유를 놓고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댔다. 어떤 매체에선 저격하려고 시도했다면 큰일 날 뻔했다며 경호원 몇 명이 숙청될 수 있다고까지 보도했다.

    여러 기자가 나에게 김정은이 라이터 대신 성냥을 사용하는 이유를 물어봤다. 정확히 알 수 없어 "라이터에서 나오는 가스가 성냥에서 나오는 화약 냄새보다 건강에 더 해로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 가문은 3대째 애연가(愛煙家)다. 북한에서는 만수무강 연구소 산하에 김씨 가문만을 위한 담배와 성냥 공장이 따로 있을 정도다. 사실 김씨 일가가 꼭 성냥만 사용하는 건 아니다. 김일성은 성냥을 사용했지만 김정일은 라이터를 사용할 때가 더 많았다. 런던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할 때 김정은의 형 김정철과 61시간을 함께 보낸 적이 있는데 김정철은 언제나 라이터를 사용했다.

    김정은과 김정철의 담배 사랑 때문에 나도 여러 번 곤경을 치렀다. 김정철은 런던에 와서 택시 안에서는 물론 최고층 건물인 '샤드'에 있는 식당에서 담배를 피우게 해달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식당 화장실로 데리고 가 문밖에서 망을 봐주면서 몇 모금 빨아보게 한 적도 있었다.

    영국 우익계 사람들 앞에서 북한 체제를 옹호하는 강연을 할 때도 담배 관련 질문이 단골로 나왔다. 어떻게 김정은만 지하철이나 병원 등 금연 공간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북한에선 사무실이나 식당도 원칙적으로 금연이지만 다들 피운다. 단, 지하철과 병원은 엄격하게 금연을 하는데 김정은은 예외다.

    좌익계 사람들은 "김정은이 담배 피우는 모습이 서방 세계에 안 좋은 이미지를 주고 있다"며 "그 사실을 평양에 보고해 북한 선전 매체들이 제발 김정은의 담배 피우는 모습을 내보내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그들의 요구를 차마 평양에 보고할 수 없었다.

    그들의 눈에는 북한의 선전 매체가 주민들에겐 담배가 몸에 해롭다고 하면서도 수령이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모순적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 입장에서 담배는 자신의 절대 권력과 장악력을 대내·외에 확고히 보여주기 위해 포기할 수 없는 도구다. 자기보다 30~40세 많은 고령 간부 앞에서 자신감 있게 담배를 피우는 모습보다 더 좋은 장면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담배 피우는 모습을 통해 수령을 전략가, 사상가로 내세우는 것은 공산권 국가의 오래된 전통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담배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공산당 선언'을 완성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일화가 있는가 하면 스탈린이나 마오쩌둥의 군사 전략이 다 담배를 피우면서 나왔다는 설도 있다.

    학생 시절 레닌은 집 안에서 담배를 피우지 말라는 어머니의 잔소리를 듣기 싫어 담배를 씹기까지 했다는 일화도 있다. 카스트로나 체 게바라는 시가를 애용한 걸로 유명하다.

    김일성은 북한산 담배만을 피웠으나 김정일은 영국산 브랜드인 로스만(ROTHMANS)을 좋아했다. 김정은은 할아버지처럼 국산품을 좋아하는 것 같다. 애호하는 담배 브랜드가 '7.27'이란 말도 있고 '건설'이란 말도 있다. 과거 북한에서 제일 인기 있었던 외국산 담배는 로스만이었으나 지금은 일본산 피스(PEACE)이다.

    담배 문화는 남북한 남자들의 가장 큰 차이점이기도 하다. 나는 비흡연자이지만 북한 남자들의 흡연 비율이 한국보다 훨씬 높다. 한국은 어디 가나 금연 장소로 지정돼 있어 담배 피울 수 있는 곳이 별로 없어 깜짝 놀랐다. 이렇게 금연 문화가 선진화돼 있을 줄은 몰랐다.

    남북 문화적 이질감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북한에서도 금연 문화가 확산했으면 한다. 이왕이면 김정은부터 금연 운동에 앞장서면 어떨까. 그게 건강에도 도움이 되고 정상 국가 지도자로 한발 더 나아가는 길 아닐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