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를 최악의 미세 먼지가 공습했는데, 정작 국내 주요 환경 단체들은 제대로 된 성명이나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1일부터 7일까지 수도권 등에 전례 없이 일주일 연속 미세 먼지 비상 저감 조치가 내려졌지만 국내 최대 환경 단체로 꼽히는 환경운동연합은 이 기간 미세 먼지 문제에 대한 논평을 한 번도 내지 않았다. 지난달 28일 보령 화력발전소 앞 등에서 1인 시위를 벌이며 "미세 먼지 대책으로 노후 화력발전소를 조기 폐쇄하라"고 주장한 정도였다. 반면 미세 먼지가 최고조에 이른 지난 6일엔 '핵폐기물은 답이 없다'는 시민 선언 행사에 참여해 탈원전 목소리를 높였다. 오는 9일에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8주기를 맞아 행진을 할 예정이다.

환경운동연합은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모두 177건의 성명서·논평을 발표했다. 그중 탈원전을 주장하는 내용이 48건으로 가장 많았고, 4대강 사업에 대한 내용이 22건이었다. 반면 미세 먼지에 대한 내용은 9건(5%)에 불과했다.

3대 환경 단체로 꼽히는 녹색연합도 움직임이 비슷하다. 녹색연합이 현 정부 출범 이후 낸 성명·논평 65건 중에서 미세 먼지 관련은 3건(5%)에 그쳤고, 미·북 정상회담 관련 논평·성명이 더 많았다. 6일 오전 회원 10명이 '미세 먼지 bye'라는 팻말을 들고 퍼포먼스를 한 정도였다. 환경정의도 큰 차이가 없었다. 지난해 4대강·탈핵 등에 대한 성명서를 19번 발표하면서도, 미세 먼지 문제는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는 현 정부 들어 환경 단체 출신들이 정부·공공기관 요직을 꿰차고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을 지냈던 인사들이 현재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사장, 한국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으로 있다. 녹색연합 정책위원은 원자력안전기술원 감사를, 환경정의 사무처장 출신은 매립지관리공사 사업이사를 맡고 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환경 단체들이 탈원전 같은 주제엔 적극 의견을 발표하면서 정작 명백한 환경 문제인 미세 먼지에 대해선 소극적인 것은 상당히 실망스럽다"고 했다. 한 전문가는 "환경 단체 출신들이 정부에서 한자리씩 차지하면서 이해관계가 맞는 사안은 공동 전선을 펴고 정부가 불리한 문제엔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진영 논리"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