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환자가 서빙… "엉뚱한 음식 나와도 괜찮아요"

입력 2019.03.06 03:01

日 전역서 '치매 식당' 체험행사… 손님 99% "주문 틀려도 OK"
'치매 카페'도 5000곳 생겨…

"주문한 것과 다른 음식이 나와도 '뭐 어때' 하며 이해해주세요."

5일 낮 12시 일본 도쿄 도심 후생노동성 26층 식당에 들어서자, 할아버지·할머니 종업원들이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주문을 받았다. 앞치마에 '주문을 잘못 알아듣는 식당'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날 식당 종업원들은 모두 치매 초·중기 환자들이었다. 자신의 나이와 이름을 깜박깜박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70대 요시다 할머니는 손님이 요청한 물 잔을 든 채,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어느 손님에게 가져다줘야 하는지 잊어버린 것이다.

5일 일본 도쿄 후생노동성 청사 식당에서 치매 노인인 혼포(오른쪽 서 있는 사람)씨가 주문받은 음식을 고객에게 전달하고 있다
5일 일본 도쿄 후생노동성 청사 식당에서 치매 노인인 혼포(오른쪽 서 있는 사람)씨가 주문받은 음식을 고객에게 전달하고 있다. 일본의 민간단체인 '주문을 잘못 알아듣는 식당'은 치매 환자도 보통 생활을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65~91세의 치매 환자 7명이 4~5일 이틀간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는 행사를 열었다. /이하원 특파원
80대 혼포 할머니도 4번 테이블에 앉은 여성 손님에게 주문을 받은 뒤, 주문표를 어디로 가져가야 할지 그만 잊어버렸다. 혼포 할머니는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아 손님이 주문한 수프와 딤섬을 테이블로 가져오는 데 성공했다. 할머니도 손님도 눈을 마주치며 활짝 웃었다.

종업원 중 청일점인 오카씨가 비교적 능숙하게 주문을 받아서 처리했다. 오카씨가 음식을 실수 없이 내오자, 손님들이 환하게 웃으며 고마워했다. 오카씨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일하니까) 즐겁다"고 했다. 한 손님이 "치매에 걸렸어도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했다.

이날 행사는 일본 민간 단체 '주문을 잘못 알아듣는 식당(Restaurant of Mistaken Orders)'이 주최했다. 이 단체는 '치매 환자도 보통 생활을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부정기적으로 비슷한 행사를 개최해왔다.

이번에도 65~91세의 치매 환자 7명이 4일부터 이틀간 후생노동성 식당에서 손님들을 안내하고, 물·음식을 주문받아 전달했다. 주문한 것과 다른 음식이 나와도, 취지에 공감한 손님들이 다들 불평 없이 웃으며 식사했다.

이 행사는 2017년 NHK 방송의 오구니 시로(小國士朗) PD가 치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꾸기 위해 이틀간 '특별 식당'을 연 데서 시작했다. '치매 환자에게 관용을 베풀며 함께 살자'는 행사가 일본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얻은 후, 사단법인까지 만들어졌다. 그 후 각종 기관과 회사에서 치매 환자들이 종업원으로 나오는 행사를 열고 있다.

지난해까지 이렇게 열린 행사에서 '특별 종업원들'이 주문을 잘못 알아들은 비율은 37%를 차지했다. 열 번 주문하면 네 번은 엉뚱한 음식이 나왔다는 얘기다. 하지만 손님들 99%가 '괜찮다'고 응답했다. 손님 중 95%가 "치매 환자에 대해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일본 정부가 추산한 올해 치매 환자는 약 600만명이다. 2025년에는 7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심각성을 인식한 일본 사회는 치매 환자에 대한 인식을 바꿔나가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2004년부터 공식 문서에서 치매(癡�)라는 말부터 쓰지 않고 있다. 치매가 '어리석고 미련하다'는 뜻이라서다. 치매 대신 '인지증(認知症)'이라는 객관적인 낱말로 바꿔 부른 지 15년 됐다. 일반인도 이제는 '인지증'이라는 말을 쓰지, '치매'란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경우가 적다.

2015년부터는 전 부처가 '신오렌지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치매 환자와의 공존 정책'을 합동 추진 중이다. 치매 환자가 걱정하지 않고 생활할 수 있도록 '치매 친화 지역'을 만들자는 정책이다. 치매 환자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거나 혜택을 주는 치매 카페도 전국에 약 5000여 개가 있다. 치매 환자를 도우려는 자원봉사자들이 전국에서 '치매 서포터'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문을 잘못 알아듣는 식당'의 발기인이기도 한 오구니씨는 "치매에 걸린 사람을 격리하는 사회가 아니라, 치매 환자와 함께 살면서 관용을 베푸는 사회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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