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건기 뒤죽박죽… 세렝게티 초식동물 쫓아 사자도 연쇄이동

조선일보
  • 문다영 탐험대원
    입력 2019.03.05 03:01

    이종열 다큐멘터리 감독이 본 초원
    乾期 때아닌 호우, 동물들 길 헤매… 길목 지키던 사자도 240㎞ 이동

    미래탐험대원 문다영(맨 왼쪽)씨가 킬리만자로산 아래의 해발 1400m에 위치한 도시 아루샤에서 커피 농장주 멜리 음테이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미래탐험대원 문다영(맨 왼쪽)씨가 킬리만자로산 아래의 해발 1400m에 위치한 도시 아루샤에서 커피 농장주 멜리 음테이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아래 사진은 탄자니아의 세렝게티 초원에서 무더위를 피해 지프 밑으로 기어 들어온 사자들. /남강호 기자·이종열 감독
    건기(乾期)가 시작되는 6~7월 무렵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의 누(영양의 한 종류) 떼들은 물 냄새를 따라 800㎞ 넘게 질주한다. 앞서가는 누를 따라 얼룩말·가젤까지 가세해 최대 200만 마리에 이르는 초식동물의 '대이동'이 펼쳐진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우기와 건기의 구분이 모호해진 요즘 누 떼들은 갈 길을 잃고 헤매기 시작했다.

    2005년부터 탄자니아에 살면서 세렝게티 초원을 촬영해 온 이종열(51) 다큐멘터리 감독은 누 떼의 이상 행동을 직접 목격했다. 현지에서 만난 이 감독은 "기후변화로 더는 초식동물의 대이동을 볼 수 없을지 모른다"고 했다. "누 떼가 풀을 먹으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갑자기 국지성 호우가 와서 이미 지나온 길 뒤에 풀이 또 나요. 누 떼들이 갈피를 못 잡고 뒤로 돌아가기 시작해요. 수백만년 동안 비슷한 경로로 이동하던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생태계는 꼬리를 물고 연결된다. 길목에서 누 떼를 기다렸다가 사냥하던 사자들에게도 문제가 닥쳤다. "사자는 분명히 누 떼가 오는 소리를 들었는데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거죠. 암사자들은 기를 쓰고 쫓아가는데 늙은 수사자는 따라갈 힘이 없어서 뒤처집니다. 지름 15㎞ 영역에서 천천히 어슬렁거리면 됐던 사자가 240㎞씩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 돼 버렸어요."

    이 감독이 기후변화를 주제로 찍은 영화 '세렝게티'는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 감독은 "사람은 더우면 에어컨이라도 트는데, 나무도 없는 평평한 초원에서 동물들은 숨을 곳이 없다"고 했다. "야생 사자 수가 지난 20년 동안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습니다. 이대로라면 2050년쯤엔 세렝게티에서 뛰어노는 사자를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릅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