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설 사라지자 메마른 커피농장… 이웃 마을끼리 물 차지하려 칼부림

입력 2019.03.05 03:01

[청년 미래탐험대 100] [1] 기후변화, 인간의 삶을 덮치다… 온난화 현장 찾아간 23세 문다영씨
킬리만자로 해발 4700m엔 무릎까지 찼다던 눈 대신 검은 흙
고원마을은 수년간 지독한 가뭄… 콩 한움큼도 수확 못한다더라

아프리카의 기후가 갑자기 돌변한 원인을 과학적으로 밝히는 작업은 학자들의 몫일 터이다. 하지만 내가 킬리만자로를 찾아 확인한 것은 빙하가 마술처럼 소멸하고 있으며 그 흐름 안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적나라하게 목격한 세 가지 장면을 소개한다.

2월 20일 :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뚝뚝

아버지 때부터 40년 동안 커피 농장을 해온 음테이씨의 이야기다. 주변 농장이 모두 커피 농사를 포기했지만 그는 기신 기신 가업(家業)을 지키고 있다 했다. "우리 농장은 섬처럼 남아 있습니다. 3년 전에 닥친 심각한 가뭄으로 이웃 농가가 전부 커피 농사를 포기했습니다. (커피는 보석·담배와 함께 탄자니아의 3대 수출품이다.)" 건기인 10월이면 하얀 커피 꽃이 피고 우기인 5월이면 빨간 커피콩이 열려야 한다. 하지만 4~5년 전부터 우기엔 비가 마르고 건기에 폭우가 쏟아져 꽃이 비를 맞아 뚝뚝 떨어진다. "커피 농장에서 일하던 이웃 수백명이 일자리를 잃고 도시에 밥벌이하러 나가 떠돕니다. 저는 아직 버티고 있지만…." 그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킬리만자로산 길만스봉에서 바라본 정상 '우후루 피크'와 분화구.
킬리만자로산 길만스봉에서 바라본 정상 '우후루 피크'와 분화구. 눈과 얼음으로 뒤덮여 있던 분화구엔 얼음 일부만 남아있다. 과학계에서는 지구온난화로 2030년엔 이 빙하가 녹아 없어질지 모른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킬리만자로(탄자니아)=남강호 기자
2월 21일 : 불타는 햇볕 아래

아루샤의 또 다른 마을 응고로도토. 이곳에서 여성협동조합을 이끄는 에베타 마이클 마사나(71) 할머니는 고향의 미래를 걱정했다. "산 전체가 눈으로 뒤덮여 하얗게 빛이 났어. 설산은 우리의 영혼 그 자체였지. 지금은 빙하가 너무 조그마해." 가문 땅에는 물 대신 악(惡)이 스며들었다. 윗마을 사람들이 수로를 만들어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가로채자 아랫마을 사람들은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됐다. "가뭄이 심한 때는 옥수수와 콩을 한 움큼도 수확하지 못해 평화롭던 동네에 수시로 다툼이 일어나. 한번은 칼부림이 나서 사람이 죽기도 했어. 이 땅에 무슨 일이 생긴 거지!"

2월 22일 : 건기인데 비가 쏟아진다

드디어 킬리만자로산에 올라간다. 아루샤의 숙소에서 선잠을 자는데 쏟아지는 비가 양철 지붕을 때린다. 건기인 2월엔 원래 비가 오지 않아야 한다. 전날 마을에서 만난 청년 오클리씨의 말이다. "4~5년 전부터 건기·우기 리듬이 무너졌어요. 아무 때나 비가 오고 우기엔 너무 가물어요. 어쩌다 그러는 게 아니라 몇 년째 이런다고요." 1년 내내 선선했던 해발 1400m 고원 도시가 무더워진 것도 변화다.(우리나라 소백산 높이가 1439m) 커피 농장에서 만난 음테이씨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몇 년 전부터 상점에 못 보던 물건이 진열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에어컨입니다."

자연의 예기치 못한 변화는 약한 자들에게 더욱 악랄해진다. 재해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기반 시설이 부족하기에 이곳 사람들은 피해를 그저 몸으로 받아내는 수밖에 없다. 탄자니아 기상청 라디슬라우스 창아 국장은 "탄자니아의 탄소 배출량은 0에 가깝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는 우리가 가장 크게 받고 있다. 이 변화는 누구의 책임인가"라고 했다. 기후변화가 인간의 영향 때문인지에 대한 논란은 아직 진행 중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만약 정말 인간 때문이라면, 그리고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이들에게 너무 미안하지 않은가.

직접 만년설을 만져보려 했던 내 꿈은 해발 4700m 키보 산장에서 좌절됐다. 마지막 날 고산병 증세로 머리를 조여오는 두통과 함께 구토가 밀려왔다. 나흘 동안 비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산을 올랐던 시간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부축을 받아 내려오며 생각했다. "그동안 비닐과 플라스틱을 펑펑 쓰며 살아온 것이 킬리만자로 산신령의 벌로 돌아오는구나…." 나는 또 한 번 킬리만자로 정상 등반에 도전할 것이다. 그날엔 킬리만자로의 산봉우리에서 기후변화라는 잠재적 재앙을 슬기롭게 극복한 인류의 노력이 하얗게 빛나는 모습을 마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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