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하노이 결렬'에도 남북경협⋅군협력 '마이웨이'

입력 2019.03.04 17:54 | 수정 2019.03.04 19:46

文대통령 "남북 합의한 협력사업 속도감 있게 준비하라"
조명균 통일 "개성금강산 재개 방안 마련...미국과 협의"
강경화 외교 "남⋅북⋅미 1.5트랙 협의 개최해 북미 대화 재개"
정경두 국방 "3월 중 남북군사회담 개최...919 군사합의 실질 이행"
전문가들 "美, 北에 ‘빅딜’ 비핵화 로드맵 요구...정부, 정세 잘못 읽어"
"유엔 제재와 충돌 가능성...우리 기업 제재 유도할 수도"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외교⋅안보 관계 장관들에게 2차 미⋅북 회담 결렬과 관련해 "(대북) 제재 틀 내에서 남북 관계 발전을 통해 북⋅미 대화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최대한 찾아달라"며 "판문점 선언과 평양 공동선언에서 합의된 남북 협력 사업들을 속도감 있게 준비해달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에서 강경화 외교·조명균 통일·정경두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하노이 회담에 대한 평가와 대응책을 보고받고 이같이 밝혔다고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문 대통령은 "지금까지 어렵게 여기까지 왔지만 무너지는 것은 순간"이라며 "북·미 모두 대화 궤도를 벗어나지 않게 인내심을 갖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자"고 했다. "우리가 중재안을 마련하기 전에 급선무는 미국과 북한이 모두 대화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의 이런 지시는 2차 미·북 정상회담이 아무런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결렬되면서 작년부터 이어온 북과의 대화 동력이 급격히 줄어드는 것을 우려한 조치로 풀이된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2차 미·북 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핵·미사일·생화학 무기’ 포기를 요구하는 이른바 ‘빅딜’을 제안한 것도 정부의 위기감을 키운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그간 북한이 요구하고 우리 정부도 현실적이라고 판단해온 단계적 비핵화 흐름에서 더 나아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 문 대통령의 주문은 북한에 비핵화를 압박하기보단 협상장에 머물게 하기 위한 유인책 마련에 더 무게를 뒀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정부는 미국보다 북한의 ‘대화 궤도이탈’을 걱정하고 있으며, 북한에 대한 ‘당근’으로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를 미국 측과 협의할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도 지난 1일 3·1절 기념사에서 "‘신(新)한반도체제’는 이념과 진영의 시대를 끝낸, 새로운 경제협력공동체"라며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방안을 미국과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 대변인은 이날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가 제재의 틀 안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이냐’는 질문에 "그럴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이와 관련한) 진전된 내용이 있었지만 언론과 공유하기에는 이른 것 같고, 좀 더 구체적 안이 나오고 협의가 본격화되면 말씀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국방·통일부도 이날 관련 대책을 문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조명균 통일부장관은 "긴밀한 한⋅미 간 협의를 바탕으로 남북 공동선언 합의 내용을 이행하려는 노력을 지속하겠다"며 "(대북) 제재의 틀 안에서 공동선언의 주요 사업을 추진하는 방안을 모색해 나가겠다"고 했다. 특히 "개성공단 및 금강산관광 재개 방안을 마련해 미국과 협의를 준비하겠다"고 했다.

강경화 외교장관은 "북한과 미국 양쪽의 현 상황 평가에 대해서 우리가 상세하게 파악해야 하고, 그에 기반해 실질적 중재안을 마련하겠다"며 "북⋅미 간 대화 재개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번 최선희-비건이 참석한 스웨덴 남⋅북⋅미 회동 경험을 바탕으로 1.5트랙 협의를 개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중국, 러시아 등 관심을 가진 나라들과의 협조를 통해 북⋅미 대화가 조속히 재개되도록 하겠다"고도 했다.

정경두 국방장관도 "한⋅미 간 비핵화 대화 분위기를 촉진시키고 굳건한 연합 방위 태세를 유지하기 위한 한⋅미 사이의 전략적 소통을 강화해 나가겠다"며 "북쪽과 대화의 모멘텀을 유지하기 위해 9⋅19 군사합의를 충실히 이행해 나가겠다"고 했다. 이어 "3월 중 남북 군사회담 개최를 통해서 올해 안에 계획된 9⋅19 군사 합의에 대한 실질적 이행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선 정부의 이런 태도가 2차 미⋅북 회담 결렬의 본질적인 원인을 간과한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번 회담 결렬을 통해 최소한 현 단계에선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뜻이 없음이 확인됐는데 정부는 북에 ‘당근’을 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또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 없이 개성공단 금강산 재개하는 것은 한⋅미 공조를 해치는 행위란 지적도 있다.

실제로 볼턴 보좌관은 3일 (현지 시각) 폭스뉴스 선데이인터뷰에서 "그(김정은)는 대북 제재 완화 대가로 완전한 비핵화를 하는 걸 거부해 ‘엄청난 경제적 (이득이 있는) 미래’에서 ‘걸어나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존의 대북 경제제재와 최대 압박 정책은 유지될 것이라며 촘촘한 제재망을 통한 압박을 강조했다. 그는 "(그렇게 되면) 김정은 위원장에게 진짜 충격이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북한과 대화 모멘텀을 이어가기 위해 실질적인 9⋅19 군사 합의 이행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국방부 대응 방안도 상황 진단이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2차 미⋅북 정상회담 결렬로 북의 비핵화 의지가 의심받는 상황에서 한⋅미 연합훈련까지 폐지된 마당에 국방부까지 나서 대북 방어 태세 약화 우려가 제기돼온 군사 합의 이행에 속도를 내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올바른 외교 정책을 추진하려면 올바른 정세 판단이 중요한데 (정부가) 정세의 흐름을 잘못 읽고 있다"고 했다. 그는 "2차 미⋅북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비핵화를 하려는 게 아니라 핵을 보유하고 제재를 해제받으려는 걸 알게 됐다"며 "그래서 미국이 단계적 접근이 아닌 빅딜로 비핵화 로드맵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유엔제재와 충돌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실적이지도 않다"며 "미국이나 국제사회로부터 우리 기업 제재를 유도할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이라고 했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북한으로서도 현 상황에선 남북간 교류에 큰 관심이 없을 것"이라며 "미국과 반대 흐름으로 가는 것도 우려스러운데 현 상황에선 우리 정부도 로우키(low-key)로 가는 게 맞는다"고 말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4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 시작 전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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