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美, 김정은 진정성 테스트 하려 '빅딜' 꺼낸 듯"

입력 2019.03.04 16:24 | 수정 2019.03.04 16:39

지난달 28일 베트남 하노이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열린 2차 미북 정상회담 확대정상회의. 이날 미측에선 존 볼턴 NSC 보좌관, 폼페이오 장관, 멀베이니 비서실장 대행이 배석했다. 북측에선 김영철 부위원장, 리용호 외무상이 자리했다. 볼턴 앞 좌석은 자리가 비어져 있다./AP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3일(현지시각) 방송에 잇따라 출연해 지난달 2차 미·북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핵·미사일·생화학 무기’를 포기하는 ‘빅딜’ 문서를 제안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의 ‘빅딜’ 제안은 의외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실제 2차 미·북 정상회담 전까지 미국 조야에서 빅딜 가능성보단 ‘스몰딜’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았다. 이 때문에 미국의 빅딜 제안은 그동안 김정은이 밝혀온 ‘비핵화’ 약속의 진정성을 테스트하기 위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2차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이 빅딜을 제안할 것이란 예상은 많지 않았다. 회담 전 트럼프 대통령이 "시간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한 것도 회담 합의 수준에 대한 기대감을 낮췄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도 북한이 주장하는 동시적·단계적 조치를 언급해 이번 회담에선 스몰딜 수준의 합의가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정상회담 후 공개된 협상 내용을 보면 미국은 영변 핵시설 외 우라늄 농축시설은 물론 미사일, 생화학 무기 프로그램의 전면적 포기를 요구했다. 특히 미국이 북한에 단순 포기 의사를 밝히라고 압박하는 수준을 넘어 구체적인 비핵화 타임테이블 제출을 요구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볼턴 보좌관이 말한 ‘핵·미사일·WMD 포기’는 당장 폐기하자는 것보다는 언제까지 해결할 것인지 북한이 입장을 밝히라는 것"이라며 "10년 이상의 장기 프로젝트가 될 영변 핵시설 이후에 핵을 포함한 WMD 제거에 돌입하는 건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회담 전까지 미 행정부 내에선 빅딜과 스몰딜 흐름이 경합했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하지만 회담에 들어간 트럼프 대통령은 빅딜 카드를 꺼내들었다. 트럼프의 이런 선택은 김정은이 확실하게 핵을 포함한 대량살상무기(WMD)를 포기할 의사가 있는지 확인하려고 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협상 능력을 믿었지만, 정보 당국의 보고를 통해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에 대해서 반신반의 했을 것"이라며 "결국 스몰딜조차 이루지 못한 채 회담이 끝났다"고 말했다.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빅딜을 제안함으로써 김정은이 핵포기 의사가 없음을 확인했다"면서 "트럼프는 영변 전체 폐기는 물론 핵·미사일 생산·저장 시설을 다 보자고 한 것 같은데 핵을 포기할 생각이 없는 김정은은 받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베트남 하노이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열린 2차 미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왼쪽)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연합뉴스
빅딜 범위에 WMD를 포함시킨 것도 이날 볼턴 보좌관의 발언에서 주목되는 부분이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미국은 이번에 비핵화 개념을 WMD 전반으로 확장하고 생화학 무기까지 포함시켰다"면서 "미드딜 수준에서 합의를 했을 경우 ‘핵 군축’으로 인식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WMD까지 포함한 빅딜 카드를 들고 와 ‘안받으면 협상을 깬다’는 생각으로 임했다"고 분석했다.

볼턴의 ‘빅딜 제안’ 공개가 2차 미⋅북 정상회담 결렬을 둘러싸고 미국과 북한의 진실 공방이 벌어지는 가운데 나온 점도 주목된다. 2차 정상회담 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북한이 우리에 제안한 것은 일부 폐쇄였다"고 주장한 반면,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영변 핵시설의 전부 폐기를 제안했다"고 말했다. 그런 만큼 미국 역시 당분간 냉각기를 갖고 북한의 대응을 주시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의 말을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했는데 거기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볼턴이 빅딜 제안 사실을 공개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당분간 양측 간 진실공방이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윤덕민 전 원장은 "실무협상은 열릴 수 있겠지만 3차 미⋅북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볼턴이 말한 ‘영변+알파(α)’ 정도의 결단을 북한이 해야한다"면서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결단을 갖고 나와야 트럼프 대통령도 관심을 가질 것이다. 국내 정치적으로 과제가 쌓인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 분야에 드라이브를 거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6개월 정도는 정중동의 모습일 것이다. 다만 물 밑에서 관리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성훈 전 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3차 정상회담을 갖기로 약속하지 않았다. 다시 만나자고 한 것도 의례적인 발언"이라면서 "당분간 3차 정상회담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한 외교소식통은 "이번 정상회담 후 서로가 제안한 카드가 어느정도 공개가 됐다"면서 "여기서 누가 더 물러서는지에 따라 협상의 승리자와 패배자가 나오게 된다. 향후 협상이 더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되는 이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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