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美 빅딜 전략' 몰랐던 듯...한⋅미 공조 구멍?

입력 2019.03.04 14:06 | 수정 2019.03.04 15:21

하노이 2차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청와대가 미국 측 회담 전략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거나 오판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정황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일각에선 미국이 보안을 의식해 협상 전략을 의도적으로 한국 정부와 공유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지난달 18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지난달 18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우선 청와대는 ‘빅딜(big deal) 아니면 노딜(no deal, 합의 불발)’이라는 미국의 하노이 회담 전략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빅딜은 북한의 핵시설 및 핵무기 전반을 해체하고 이에 따라 미국이 대북제재 완화 등 상응조치를 하는 합의를, ‘스몰딜(small deal)’은 영변 등 일부 핵시설 해체와 대북제재 일부 완화를 맞바꾸는 합의를 말한다.

그런데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하노이 회담 첫날인 지난달 27일 미⋅북 간 스몰딜 수준의 합의가 이뤄질 것이란 관측과 관련해 "일부 우리 언론만 쓰는 개념"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스몰딜, 빅딜 개념은 과거 ‘리비아식(式)’ 해법의 변형된 형태 같은데, 그 ‘리비아식’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면서 "북한과의 관계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정부가 더 이상 그 용어와 개념을 쓰고 있지 않다"고도 했다. 리비아식 해법은 선(先) 비핵화, 후(後) 보상을 골자로 하는 비핵화 방식이다.

그러나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3일(현지 시각)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2차 미·북 정상회담 때 비핵화 요구 사항과 그에 관한 상응조치로 경제 보상 방안을 담은 ‘빅딜’ 문서를 북한 측에 제시했다고 밝혔다. 이 문서엔 영변 외 기타 핵시설 해체 요구도 포함됐다고 한다. 북한 비핵화 해법으로 ‘리비아식’ 모델을 주장했던 볼턴 보좌관은 하노이 회담 둘째날인 지난달 28일 확대 정상회담에 배석했다. 이런 점 등으로 볼 때 하노이 회담에서 ‘영변 외 핵시설’ 자료를 제시하며 북한을 압박한 미국의 계획을 청와대가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청와대는 하노이 회담 이틀째인 지난달 28일 열린 확대 정상회담 결렬 사실이 공개되기 30분전까지도 이같은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두 정상이 합의 도출에 실패하면서 업무 오찬과 합의문 서명식도 취소됐다. 그러나 김의겸 대변인은 이런 사실이 알려지기 30분 전인 오후 2시10분 시작한 정례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이 오후에 예정된 미⋅북 합의문 서명식을 참모들과 함께 텔레비전 중계로 지켜볼 것"이라고 전했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이날 오전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에게 회담 상황을 보고받았다고 밝혔는데, 결렬 가능성에 대한 보고는 제대로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가 하면 청와대는 회담을 앞두고 미⋅북 간 종전선언이 이뤄질 가능성을 높게 보면서 대북제재 해제와 남북 경협에 대한 기대감을 키워왔다. 김의겸 대변인은 회담에 임박해선 연일 미국과 북한이 종선선언에 합의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북한의 경제가 개방된다면 주변 국가들과 국제기구, 국제 자본이 참여하게 될 것"이라며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 재개를 염두에 둔 ‘신(新)한반도체제’ 구상을 밝혔다.

이 때문에 청와대가 낙관적 기대를 앞세운 나머지 상황을 냉철하게 보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회담 결렬 가능성을 사전에 탐지하지 못한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관련 정보를 파악하고도 분석 과정에서 낙관적 기대가 과도하게 반영돼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한 것이란 얘기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 정보관리실장을 지낸 김정봉 유원대 석좌교수는 "대북제재 해제에 대한 기대가 크다보니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회담 전략을 공유하지 않았다는 평가도 있다. 김 교수는 "볼턴 보좌관이 하노이 회담 직전인 지난달 24~25일 예정대로 부산에 와서 정의용 안보실장을 만났다면 ‘핵무기 체계를 신고하고 폐기하면 제재를 해제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회담 결렬’이라는 미국의 입장을 이야기했을 것"이라며 "그런데 한국에 이를 이야기했을 경우 회담 전략이 북한에 노출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방한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한편, 문 대통령은 4일 오후 청와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이번 북⋅미 정상회담에서 양측이 합의에 이르지 못한 입장 차이를 정확히 확인하고, 그 입장 차를 좁힐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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